이정황 경기 평택경찰서 수사2과 경위. /사진=독자제공
최근 3년간 경기도 일대 신축 상가 건물에는 인테리어 비용을 지원한다는 안내 문구가 등장했다. 건축주들이 불경기로 상가 임차인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이같은 문구가 나타났다.
40대 남성 A씨도 2022년 1월 해당 문구를 보고 경기 평택의 한 건축주를 찾았다. 그는 헬스장과 골프연습장을 차리고 싶다고 했다. 건축주는 약속대로 A씨에게 인테리어 지원금 8억원을 선지급하고 계약을 맺었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경기 평택경찰서 이정황 경위는 9개월 동안 수사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찾아냈다. A씨 일당은 평택 외에 시흥, 화성, 천안 등 총 4곳에서 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A씨가 뜯어낸 인테리어 지원금은 29억원, 건축주에게 미납한 월세는 21억원에 달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새로운 사실들… 어떻게 발견했나
A씨가 운영했던 사업장이 돌연 폐업한 모습. /사진=독자제공
이 경위는 온라인을 통해 일부 회원들이 A씨에게 피해를 본 사실도 확인했다. 직접 피해자 카카오톡 채팅방에 들어가 상황을 공유해달라고 요청했다. 덕분에 많은 회원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고 이를 바탕으로 전체적인 피해 규모도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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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추적도 중요했다. 인테리어 지원금이 어떻게 이용됐는지 파악해야 고의성도 증명할 수 있었다. 입출금 거래 내역을 살펴보니 A씨는 A씨가 관리하는 또 다른 계좌로 연이어 이체했다. 이 경위는 "보통 돈을 받으면 제 3자에게 흘러가는 게 정상인데 자신에게 돈을 이체시키는 게 이상했다"고 말했다.
A씨가 운영했던 사업장이 돌연 폐업한 모습. /사진=독자제공
경찰은 지난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 위반(사기) 혐의로 A씨를 구속하고 공범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수개월간 잠복 수사를 비롯해 주거지 압수수색, 휴대폰 포렌식 작업을 진행한 결과였다. 사건 보고서 페이지만 1만장이 넘었다.
A씨는 당초 사업을 진행할 능력과 자금이 부족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인테리어 지원금 중 일부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타 사업장 운영비로 돌려막았다. 인테리어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아 영업도 안되고 매출도 떨어졌다. 악순환이 반복돼 개업 자체를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경기 평택경찰서 수사2과 수사11팀 모습. /사진=독자제공
이 경위는 "건축주들이 특히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다"며 "인테리어 지원금을 주고도 영업을 제대로 운영하지 않으니 손해가 큰 상황이었다. 팀원들과 9개월 동안 고생한 만큼 도움을 줄 수 있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2년 차 경찰인 이 경위는 "매일 같이 야근하고 수천장의 보고서를 읽다 보면 지치는 순간도 있다"며 "경찰은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힘을 얻는다.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경찰이 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