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옷도 다시 한번…'구제' 입고 지구 '구제', 이게 요즘 MZ 힙

머니투데이 조한송 기자, 하수민 기자 2024.10.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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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2030의 새로운 추구미, 슬로패션 (上)

편집자주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패션산업은 매년 1000억 벌에 달하는 의류를 생산한다. 이중 73%는 재고로 남아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패션산업이 배출하는 탄소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10%에 달한다. 이러한 인식 속에 유행을 따르는 대신 친환경적으로 옷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향인 슬로패션이 점차 주목받는다. 중고 구제 의류들은 값싼 프리미엄이 붙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품으로 재탄생 중이다. MZ세대가 슬로패션을 소비하는 법, 친환경적 의류 소비에 동참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짚어본다.

"20만원 추리닝, 비싸도 인기 많아요"…구제 의류도 '프리미엄' 대변신[르포]
- 구제의류 찾는 2030

지난 18일 오전 수입 구제의류 전문점 옴니피플갤러리에서 맨투맨 티셔츠를 살펴보는 고객의 모습/사진=조한송 기자지난 18일 오전 수입 구제의류 전문점 옴니피플갤러리에서 맨투맨 티셔츠를 살펴보는 고객의 모습/사진=조한송 기자


지난 18일 오전 샤넬·구찌 등 명품 매장이 들어선 압구정로데오역 인근에 외관부터 고급 패션 편집숍을 연상케하는 구제의류 매장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아메리칸 빈티지를 콘셉트로 1980~1990년대 유행했던 미국산 구제 의류들을 들여와 선보이는 편집숍이다.



해당 구제의류 매장의 주요 인기 아이템은 폴로와 리바이스의 옛 제품들이다. 매장을 둘러보면 기성 상품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기성품 구제 의류 이외에도 디자이너들이 구제 의류들에 그림을 그리거나 패턴을 다시 입힌 업사이클링 제품의 비중도 20~30%가량 된다. 매장 한켠에 비치된 추리닝 바지들은 맨투맨 티셔츠를 조합해 만들어진 것으로 바지 하단에 맨투맨의 주머니가 달린 것이 특징이었다. 구제 의류를 활용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품을 만든 것이다. 그 옆에는 리바이스 청바지를 활용해 만든 작은 가방들이 놓였다.

구제 제품이지만 가격은 결코 저렴하지 않다. 해당 추리닝 바지의 가격은 20만원에 달했다. 진주 등의 장식으로 리폼해 내놓은 리바이스 청자켓은 39만원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패턴, 그리고 단 하나뿐인 제품이라는 희소성 때문에 찾는 고객이 많다고 한다. 수입 구제의류 전문점 옴니피플갤러리 관계자는 "하루 평균 100여명의 고객이 방문한다"며 "주 상품들은 1980~1990년대 만들어진 것들인데 같은 브랜드 제품이라도 지금 만들어진 것과 원단이나 질감에서 차이가 있다보니 찾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압구정로데오역 인근에만 이곳 매장 말고 아폴로, 빈티지덕 등 유명 구제의류숍 두 곳이 들어서 있다. 주 고객층인 20~30대 여성에게 이곳은 보물찾기 명소다. 압구정로데오역 인근에서 열리는 주요 브랜드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에 들렀다가 구제의류숍 찾는 것이 주요 코스다.

패션회사 LF에서 자체 유튜브 'LF랑 놀자'와 인스타그램 '9to6' 채널을 운영중인 임형익 매니저와 박소연 매니저도 해당 매장을 즐겨찾는 고객중 한명이다. 매일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발견해 소개하는 것이 주 업무인 이들이지만 구제의류숍에는 매번 이들이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제품들이 넘쳐난다. 박 매니저는 "보물찾기 하는 느낌으로 일주일에 한 두번은 구제 의류숍을 방문한다"며 "구제 의류들을 구매함으로써 환경 보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고 설명했다.

중고 제품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구제 의류 전문점들도 변화중이다. 과거 동묘시장의 분위기를 떠올렸다면 착각이다. 프리미엄의 느낌을 강조하며 매장 인테리어에도 힘쓰고 고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힘쓰고 있다. 희소성과 프리미엄을 앞세운 구제의류 숍들은 기성복 브랜드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새옷만 팔던 주요 백화점도 구제 의류 모시기에 나섰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창고형 빈티지숍인 '비바무역'은 부산, 천안 등의 대형 백화점에서 임시 매장을 열었다. 팝업 행사에는 유명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이 방문해 화제가 됐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각자의 개성과 멋은 살리면서도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보니 다양한 수요에 부응하고자 마련된 행사"라고 설명했다.

안 팔리던 옷, 장인의 손길로 '한정판'…"힙한 슬로패션에 빠졌어요"
- 업사이클링 패션



서울디자인2024에 전시중인 래코드의 제품들/사진=조한송 기자 서울디자인2024에 전시중인 래코드의 제품들/사진=조한송 기자
지난 21일 오후 방문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디자인 축제인 '서울디자인2024'이 진행중이었다. 다양한 브랜드가 각자의 디자인을 뽐낸 가운데 한켠에는 생산된 후 팔리지 않아 재고로 남은 원단 등을 재활용해 만들어진 가방, 파우치 등이 놓였다.

얼핏보면 기존 의류 소품들과 별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각 제품들은 소재나 원단 등에서 차이가 있다. 가령 쇼퍼백의 제작에는 재활용 나일론에 티타늄 코팅을 더한 은색 원단이 쓰였다. 푹신한 캔디모양의 토트백의 모양을 잡아줄 내장제로는 패트병을 사용한 원사로 만들어진 친환경솜이 활용됐다. 모두 국내 의류 회사인 코오롱FnC에서 전개하는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RE;CODE)'에서 내놓은 제품들이다.



해당 브랜드는 팔리지 못하고 새 옷 상태로 버려지는 재고를 분해 또는 해체해 새로운 상품으로 선보인다. 오랜 기술을 가진 전문 봉제 장인의 손길을 통해 소량으로 제작되는만큼 각각의 제품에는 몇번째 상품인지 순번이 매겨진다. 재고 의류가 단 하나 뿐인 고유한 상품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행사장 한켠에는 참여자들이 직접 재고 원단을 활용해 팔찌를 만드는 공간도 마련됐다. 재고 의류의 원단을 잘라서 만든 끈과 단추 등을 활용하니 20여분 만에 나만의 팔찌가 완성됐다. 코오롱 관계자는 "재고를 되살리는 의미로 행사를 진행중"이라며 "참여자들이 업사이클링을 직접 체험해보면서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어렵지 않고 재밌고 쉬운 활동이라는 점을 전파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판매되지 않은 의류를 재사용하거나 재활용할 의무를 법으로 도입한 프랑스 등에선 국내보다 업사이클링 문화가 친숙한 편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관련 내용이 법제화되지 않았지만 국내 패션·의류 기업들은 친환경 소비를 중시하는 그린슈머를 겨냥해 업사이클링 브랜드나 상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LF가 전개하는캐주얼 브랜드 '헤지스'도 우수한 원단의 재고에 독창적인 디자인을 더해 새옷으로 재탄생 시키는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를 꾸준히 전개중이다.

지난해 말에는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인 '올리언스스토어'와의 협업을 통해 소각 직전의 재고를 빈티지 원단, 부품들과 조합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퀄팅 스웨터' '밀리터리 점퍼' 등을 선보였다. 반응은 뜨거웠다. 판매 시작 일주일도 안돼 준비한 상품의 40%가 팔려나갔다. 지난 5월에는 패션 브랜드인 '티비오에스(T.B.O.S)'와 협업해 두번째 업사이클링 컬렉션 20점을 선보였다. 티비오에스의 윤경덕 작가는 헤지스의 재고 뿐만 아니라 빈티지 마켓에서 오래된 헤지스 제품을 직접 공수해 작업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와 낮은 품질의 패스트 패션에 피로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슬로패션'에 주목하고 있다"며 "지속가능성과 브랜드 철학이 공존하는 업사이클링 컬렉션으로 소비자들의 수요에 응답하는 브랜드가 앞으로의 패션 업계를 이끌어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안 입는 옷 팔고 1500만원 벌었다…환경 살리고 지갑도 살찌우는 법
- 옷 오래 입기, 이렇게 동참한다

리유니클로 스튜디오에서 제공되는 자수(Remake) 서비스 샘플. /사진제공=유니클로 리유니클로 스튜디오에서 제공되는 자수(Remake) 서비스 샘플. /사진제공=유니클로
유행에 따라 신제품을 빠르게 선보이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의류 재고가 기후 위기의 '빌런'이 되면서 옷을 쉽게 버리지 않고 오래 입는 것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패션업계는 헌 옷을 커스터마이징하는 서비스를 오픈하거나 다양한 입지 않는 옷을 판매할 수 있도록 중개하는 등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24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유니클로는 최근 롯데월드몰점에 구멍·찢어짐, 솔기, 패치워크 등을 수선해 줄 뿐만 아니라 70여 가지의 자수 패턴을 통해 기존의 옷을 새롭게 커스터마이징해주는 리유니클로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유니클로가 2022년부터 전 세계 글로벌 매장에서 선보인 서비스로 국내에서는 최근 처음 도입됐다. 유니클로에서 구매한 의류를 대상으로 서비스는 진행되며 수선 비용은 4900원에서 ~2만4900원이다.



더 이상 입지 않는 유니클로 옷을 매장에 비치된 리유니클로 의류수거함에 기부할 수도 있다. 기부된 옷들은 전 세계 도움이 필요한 곳에 보내지거나 일부 옷들은 또 다른 옷의 소재로도 재활용된다. 같은 유니클로 매장 2층에는 업사이클링 아티스트 이우재 작가가 폐신문지, 유니클로 제품 등을 활용해 제작한 의자도 배치했다.

입지 않는 옷을 판매하는 방법도 있다. 코오롱 브랜드 의류는 중고 거래 플랫폼 '오엘오(OLO) 릴레이 마켓'을 운영한다. 고객이 코오롱 브랜드의 중고 제품을 판매하면 보상으로 포인트를 지급받는다. 이는 코오롱몰에서 새 상품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순환된다. 중고 제품 거래도 가능하다. 코오롱FnC가 전개하는 코오롱스포츠 상품부터 럭키슈에트, 시리즈, 쿠론 등 다수 브랜드의 중고 거래가 진행되고 있다. 중고 아우터는 70% 이상 할인된 금액에 구매할 수 있다.

패션 리커머스 앱 '차란'은 이용자가 입지 않는 옷을 판매 신청하면 의류 수거부터 살균, 착향, 제품 사진 촬영 등 상품화 과정을 거쳐 판매 및 배송 등 전 과정을 대행한다. 만약 상품이 판매되지 않으면 기부하거나 배송비만 내고 돌려받을 수 있다. 현재 차란에서 가장 많이 판매한 이용자는 1500만원의 수익을 올렸고, 가장 많이 구매한 이용자는 4000만원을 소비했다.



이같은 패션업계의 움직임은 의류 폐기물과 재고로 비롯된 환경 오염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겼다. 국내 패션산업은 연간 60조원 어치에 달하는 의류 폐기물을 배출한다. 대규모 의류 소비와 과잉생산에 따른 재고 때문이다.

패션업계는 리사이클링 관련 서비스나 지속가능한 소재로 제작한 의류 등 품목이 확대될 것으로 보고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전세계 지속가능 패션 시장 규모는 꾸준히 성장해 2030년까지는 330억5000만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면서 "이에 발맞춰 다양한 서비스나 소재 개발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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