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메리크리스마스, ㈜빅스톤스튜디오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은 원작 소설집에 담긴 ‘재희’,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 네 편을 손태겸, 허진호, 홍지영, 김세인 감독이 2부작씩 연출했다. 동명 영화가 첫 번째 단편 ’재희‘를 남녀 주인공 중심의 로맨틱 코미디로 풀었다면, 드라마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주인공 고영(남윤수)이 겪는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드라마가 연결성을 가지면서 각 에피소드 길이로 보면 두 시간 분량의 영화 네 편을 합친 것과 같아서 풍만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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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미애’는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과 직접적인 비교가 불가피한 에피소드다. 주인공의 대학시절 룸메이트이자 20대를 함께 보낸 여성 재희의 이야기를 다룬 에피소드로 드라마에선 이름을 미애로 바꾸었다. 영화에서 김고은이 연기한 역할을 드라마에선 이수경이 맡아 귀엽고 엉뚱한 캐릭터의 성격이 부각되었다. 영화 ‘아기와 나’(2017)에서 철부지 청년의 성장담을 가감 없이 보여준 손태겸 감독이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의 각색과 1,2화 연출을 맡아 청춘의 사랑과 고충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원작에서 고영이 만나는 공대생 캐릭터는 연상의 포토그래퍼로 바뀌어 새로운 연애사를 보여준다.
3,4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고영의 엄마(오현경) 이야기와 고영과 운동권 출신 노영수(나현우)의 만남을 다룬다. 동명 원작은 2019년 제10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으로 박상영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팬이 많다. 드라마 연출은 2000년대 한국 멜로 영화를 이끈 허진호 감독이 맡았는데, 고영과 영수가 함께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장면이나 19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 이은하의 노래를 사용하는 등 멜로 장인다운 내공을 발휘한다. 허진호 감독 영화의 음악을 맡아온 조성우 음악감독이 배우로 특별 출연한 장면도 웃음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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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고영과 규호(진호은)의 로맨스를 다룬 에피소드로 ‘결혼전야’(2013),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2016), ‘새해전야’(2021) 등 로맨스 영화를 주로 연출한 홍지영 감독이 맡았다. 고영이 규호를 극적으로 만나 장거리 데이트를 하고 권태기를 겪는 일련의 연애 과정을 현실적으로 그렸다. 연작 소설이긴 해도 개별성을 띠는 원작들을 연결하는 이야기를 추가하고 미애를 재등장시키는 등 세심한 연출이 돋보인다. 고영의 비밀이 드러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중반부의 무게 중심도 잘 잡혀 있어, 갈수록 드라마가 깊어진다.
사진=㈜메리크리스마스, ㈜빅스톤스튜디오
7,8화 ‘늦은 우기의 바캉스’는 고영이 하비비(김원중)를 만나는 이야기다. 첫 장편 데뷔작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2022)로 부산국제영화제 5관왕을 비롯해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김세인 감독이 연출을 맡아 특유의 예리한 연출력을 선보인다. 작가가 된 30대 고영이 ‘헤어진 후에 알게 되는 것들’을 써 내려간 원작의 문장과 이국의 정취를 이질감 없이 영상으로 옮겼다. 고영의 아버지로 출연한 봉만대 감독의 밉상 연기도 놓치면 서운하다.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이 유의미한 결과물로 완성될 수 있었던 건 여러 가지 이유다. 박상영 작가가 각본에 참여해 원작의 정체성을 지켰고, 각색을 맡은 손태겸 감독이 청춘 이야기의 본질과 감각을 놓치지 않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 40주년작 기념작이라는 상징성도 있지만, 걸출한 연출력을 지닌 영화감독들과 에피소드별로 연출을 달리하는 할리우드 드라마 시스템이 최적의 시너지를 낸 경우다. 여기에 남윤수와 출연 배우들의 척하지 않는 연기와 열정이 뭉쳐 한국 퀴어 드라마의 정점을 찍는다. 결과적으로 ‘대도시의 사랑법’은 영화와 드라마 모두 웃기고 재밌고 잘 만들었다. 영화가 나을까, 드라마가 나을지 고민하지 말고 둘 다 보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재미와 웃음의 원천인 원작 소설은 당연히 읽어야 한다. 나의 좁은 세계관을 넓혀줄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