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작가,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향한 열중 [인터뷰]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4.10.2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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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작가 / 사진=㈜메리크리스마스, ㈜빅스톤스튜디오박상영 작가 / 사진=㈜메리크리스마스, ㈜빅스톤스튜디오


“웃기지 못하면 하루가 힘들다”더니 대화에서 노란 샤프란 같은 웃음꽃을 피울 줄 아는 이였다. 첫인사에서 보여준 수줍음은 빠르게 사그라들었고, 유쾌하고 진솔하게 자신과 작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자신의 한 작품과 닮아 있었다.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풀어내고, 불편한 소재를 기꺼운 쪽으로 풀어내는 유머. 그것이 기자가 목격한 박상영 작가의 모습이자 ‘대도시의 사랑법’의 전면이었다.

박상영 작가를 만난 건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후보에 올랐던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다. 박 작가는 ‘대도시의 사랑법’의 원작자이면서 드라마 극본을 썼다.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은 작가 고영(남윤수)이 다양한 만남을 통해 삶과 사랑을 배워가는 청춘의 로맨스를 그린다. 연작 소설인 원작에 담긴 ‘재희’,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 4편의 에피소드를 모두 담았다. 드라마는 에피소드별로 연출을 달리하는 할리우드 시스템을 차용해 손태겸, 허진호, 홍지영, 김세인 감독이 각자의 연출 방식으로 2부씩 총 8편의 시리즈를 내놨다.



“2016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했을 때 웹드라마 공모전도 같이 당선됐어요. 소설과 드라마 대본을 투 트랙으로 작업하는 게 저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래서 집필에는 어려움이 없었죠. 제작발표회에서 우스갯소리로 ‘네 명의 감독과 함께하는 건 종갓집에서 시어머니 4명을 모시는 것과 같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요(웃음). 감독님들 의견을 최대한 맞춰 드리는 쪽으로 작업했어요. 의견을 주시면 수정도 여러 차례 거쳤죠. 1, 2회를 연출한 손태겸 감독님은 각색을 많이 하셨어요. 5, 6회를 연출한 홍지영 감독님은 제 각본을 100% 수용해 주셨고요. 연출자별로 그런 차이가 있었죠.”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스틸 컷 / 사진=㈜메리크리스마스, ㈜빅스톤스튜디오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스틸 컷 / 사진=㈜메리크리스마스, ㈜빅스톤스튜디오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물이다. 극의 주인공 고영이 가볍게 만나거나 진하게 사랑하는 연인은 모두 남자들이다. 고영을 연기한 남윤수는 극에서 15명의 남자와 키스신을 찍기도 했다. 사회적 관념이 많이 바뀌면서 퀴어물이 예전보단 수면 위로 올라오긴 했지만, 상업 작품으로 제작되는 건 여전히 진입장벽이 높다. ‘대도시의 사랑법’ 역시 드라마로 만들어지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편성, 캐스팅 등 무엇 하나 쉬웠던 것이 없었기에 박상영 작가는 현재 모든 감각과 애정이 ‘대도시의 사랑법’에 쏠려 있다.

”이 작품이 무사히 공개된 것만으로도 정말 기뻐요. 소재의 장벽 때문에 플랫폼에서 난색을 표하기도 했거든요. 플랫폼을 찾는 것부터가 어려웠죠. 제작의 난이도가 높았던 작품이에요. 그래서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매우 무겁고 두꺼운 철문을 여는 느낌이었어요. 배우 캐스팅 과정도 정말 힘들었어요. 좋은 감독님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요. 기꺼이 작품에 합류해 준 지금의 배우들은 소재에 대한 편견이나 장벽이 없었어요. 그래서 작품이 더 빛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작품 속에서 진심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거든요. 규호 역의 진호은 배우는 촬영을 끝내고 엉엉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남윤수 배우는 오히려 제가 걱정스러울 만큼 ‘명예 게이’처럼 매체에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서 정말 감사했죠.“

‘대도시의 사랑법’은 드라마로 옮겨오면서 약간의 설정 변화를 줬다. 주인공 고영은 소설에선 외모가 평범한 쪽으로 묘사되지만, 드라마에선 잘생기고 훤칠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고영이 잘생겼기에 엄마인 염은숙 역할도 미스코리아 출신인 오현경이 연기하는 등 소소한 단면들이 바뀌었다. 하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일관된다.


“소설에선 고영의 별명인 ‘뚱고’가 ‘뚱뚱한 고양이’이라는 뜻으로 쓰였는데, 드라마에서는 ‘뚱한 고양이’로 바뀌었죠. 인물이 훤칠해지니까 어머니도 미스코리아로 바뀌었고요(웃음). 그렇게 바뀐 부분도 있지만, 이 작품이 관통하는 메시지는 같아요. 제작사에서 원작을 좋게 봐주셔서 저에게 연락을 주셨던 거고, 원작 에센스를 그대로 살리고 싶다고도 하셨거든요. 원작이 가지고 있는 영혼을 계승하고자 했죠.”

박상영 작가 / 사진=㈜메리크리스마스, ㈜빅스톤스튜디오박상영 작가 / 사진=㈜메리크리스마스, ㈜빅스톤스튜디오


손태겸, 허진호, 홍지영, 김세인 네 명의 연출진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박상영 작가는 소통해야 할 감독이 많아 불편함을 느끼기보다는, 에피소드별로 연출을 달리해 섹션별로 개성을 살리고 다채로움을 준 것에 크게 만족감을 느꼈다.

“섹션별로 연출을 달리했던 것이 오히려 다채롭게 느껴져서 좋았어요. 애초에 시리즈를 생각하고 썼으니까요. 전체적으로는 한 인간의 청춘물이라고 생각하고 집필했는데 감독님마다 다른 초점으로 인물을 연출하는 게 느껴졌어요. 같은 인물을 두고 시선을 다양하게 분화한 것에서 다채로운 재미가 있는 작품이에요. 가장 제 글의 의도를 영상으로 잘 표현해 주신 분을 꼽자면 홍지영 감독님이에요. 홍 감독님은 마치 저의 영혼과 연결된 것처럼 연출을 해줬어요.”

‘대도시의 사랑법’의 고영은 타고난 유쾌함으로 존재의 슬픔을 가리고 있는 인물이다. 성소수자라서 아프거나 슬픈 게 아닌, 청춘이라 겪는 보통의 고초들이다. 고영이라는 인물이 더욱 어여쁜 건 지난 과오를 회한하며 골몰하기보다, 오늘에 집중해 유영하는 삶의 자세다. 삶의 미숙함을 있는 그대로 껴안은 이 청춘은 사랑에도 거칠 것 없어 매력적이다. 남윤수는 그런 고영을 제 것으로 흡수하며 몰입감 있는 연기를 보여줬고, 박상영 작가 역시 높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남윤수 배우의 고영은 정말 사랑스러웠어요. 제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의 의외성을 보여주더라고요. 남윤수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연기하는 배우 같아요. 제가 생각한 고영은 그렇게 사랑스러운 인물은 아니었어요. 좀 웃긴 인물이었는데 남윤수 배우 덕분에 되게 사랑스러워졌어요. 못됐지만 미워할 수 없는 스펙트럼이 추가된 것 같아서 더 재밌게 봤어요.”

박상영 작가 / 사진=㈜메리크리스마스, ㈜빅스톤스튜디오박상영 작가 / 사진=㈜메리크리스마스, ㈜빅스톤스튜디오
박상영 작가는 ‘대도시의 사랑법’이 영화와 드라마로 동시에 공개되면서 어느 때보다 바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때문에 받은 사랑을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고 있고, 글 작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박 작가는 “한계 없는 작가”가 되기를 목표했고, 그의 무한함에는 조명 밖의 것들을 비추는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를 좇는다. 셈 없는 박 작가의 청사진을 듣고 있자니, 그의 글에 묻어나는 낭만과 순수성이 더욱 미덥게 느껴졌다.



“한계가 없는 작가이고 싶어요. ‘대도시의 사랑법’을 통해 퀴어 이야기를 원 없이 해봤으니 다른 장르를 해보고 싶어요. 흔히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아요. 전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존재하는 작가라고 생각해요. 조명되지 않았던 소수자들이나 약자들에게 렌즈를 비추는 거요. 대중 장르에서 보여주기 쉽지 않은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제가 쓴 소설 중에 ‘믿음에 대하여’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 책으로 지금 드라마 극본을 쓰고 있어요. ‘마인’의 이나정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고 있어요. 지금 4부까지 썼는데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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