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배송원·금감원 과장·검사 연기 '착착'…60대 계좌 탈탈 털었다

머니투데이 이강준 기자 2024.10.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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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검거 브리핑에서 경찰이 압수한 증거품을 공개하고 있다. 2024.5.2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검거 브리핑에서 경찰이 압수한 증거품을 공개하고 있다. 2024.5.2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최근 투자 손실을 입었던 60대 여성 A씨는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과 차장이라고 소개한 낯선 사람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는 "지난 5월16일에 경찰청장이 중국 경찰과 협력해 대규모 국제 보이스피싱을 해결하고 범죄자금을 회수했다"며 "범인들은 개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투자를 유도해 심각한 손실을 입혔는데 선생님의 송금기록도 확인이 된다"고 했다. 실제 올해 5월 경찰청장은 중국 공안부장을 만나 치안 총수회담을 진행했는데 이를 보이스피싱범이 인용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23일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이 검찰청·금융감독원 등 정부 기관을 사칭하는 '기관사칭형' 수법으로 60대 이상 여성을 노리고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다른 연령층에 비해 재산이 많은 60대 이상 고령층의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 피해가 늘고 있다. 올해 1~9월 기관사칭형 피해자 중 6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16%였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1%p 증가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기관사칭형 수법의 건당 피해액은 4426만원으로 126.4% 급증했다. 기관사칭형 피해 중 1억원을 넘겼던 사례도 172% 증가한 763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60대 이상 여성 피해자 비중이 늘어난 이유로 은퇴로 인해 사회적 활동이 감소하면서 발생하는 정보 부족을 꼽았다. 또 고령화에 따라 심리적 압박에 더 민감해지는 경향을 지적하기도 했다. 범죄조직은 이 점을 이용해 선한 역과 악역으로 역할을 분담해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완전히 세뇌시킨다고 했다.

예컨대 금융감독원 과장 사칭범은 "자금을 보호해주겠다, 구속되지 않도록 신원보증서를 제출해주겠다"고 피해자를 위로하고, 악역을 맡은 검사 사칭범은 "당신 때문에 피해자가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당장 구속시키겠다"며 피해자를 협박한다.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은 전화·우편·문자 등 최초 접근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질 뿐 검찰·경찰·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해 "범죄에 연루되었으니 무혐의를 입증하려면 자산 검수에 협조하라"고 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경찰은 기관사칭형 수법은 마치 다른 모든 등장인물에 의해 꾸며진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내용의 영화 '트루먼 쇼' 같이 각본도 탄탄하게 만든다고 했다.

피해자가 △카드 배송원 △카드사 고객센터 상담원 △금융감독원 과장 △검찰청 검사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사실은 다양한 배역을 맡은 범죄조직원들이다.



이들이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설치시킨 악성 앱은 모든 통신을 범죄조직원들과 연결해 철저하게 꾸며진 영화 세트장처럼 피해자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카메라와 녹음·위치확인시스템(GPS)의 위치 기능을 악용해 피해자의 일거수일투족을 24시간 지켜본다.

안찬수 경찰청 마약조직범죄수사과장은 "기관사칭형처럼 전형적인 수법은 범죄 시나리오나 최소한의 키워드라도 숙지해두면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며 "잠깐의 시간을 내어 경찰청에서 공개한 시나리오와 예방 영상을 통해 범죄 수법 및 예방법을 익혀두고, 가족과 지인에게 공유한다면 평생 모은 소중한 재산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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