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훈 도량 오너 셰프/사진=임태훈 셰프 제공
최근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예능 시리즈 '흑백요리사'에서 최종 8인에 들지 못했음에도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 사람이 있다. 1대1 대결에서 패한 선배 셰프에게 큰절을 올리고, 방출 미션에서 다른 팀원을 배려해 "나를 찍어"라고 언급한 뒤 4단계 문턱을 넘지 못한 '철가방 요리사'다. 초지일관 엿보인 보기 드문 인성에, 중식집 배달부로 시작해 셰프의 자리에 오른 진짜 '흙수저'에게 많은 대중은 몰입하고 감동했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에 위치한 중식당 '도량'에서 임태훈 오너셰프를 만났다. 그는 흑백요리사 속 '철가방 요리사'로 출연했다.
50년 중식대가 여경래 셰프와 1대1 대결 전과 후, 큰절을 올려 화제가 된 것에 대해 그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중국집 배달부로 시작해 어깨 너머로 일을 배웠기 때문에 스승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다. 그때 제 부족한 부분을 여경래 사부님 책으로 채웠다. 직접 배운 적은 없지만, 마음속으로 제 스승이라고 여겼던 분이다. 중식 분야에서는 하늘이신데 절을 안 할 수가 있겠나"라고 부연했다.
흑백요리사 포스터/사진=넷플릭스 캡처
요리사를 꿈꾸게 된 계기는 뭐였을까. 그는 크게 2가지로 회상했다. 중식당 사장님에 스카우트된 일화와 우동 한 그릇의 기억이다.
임 셰프는 "어린 시절, 할머니랑 살다가 학교를 자퇴하고 고1 때부터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근처 중국집 사장님이 '일 잘한다'고 스카우트를 했다"고 회상했다. 이를 계기로 요식업을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중국집에 취직해 요리를 배우고, 군대 가기 직전 한식당에도 취직해 어깨 너머로 요리를 배웠다. 군대 역시 취사병을 지원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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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임태훈 도량 셰프/사진=임태훈 셰프 제공
서울 종로구 관철동 한 중국집에 취직했다. 이미 요식업 경력자였지만 월 180만원에 청소와 설거지까지 도맡아 하며 밑바닥부터 새로 시작했다. 어깨 너머로 요리를 배우던 그에게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면판장(면 반죽담당)이 된지 1년여가 흐른 시점이었다.
"선배들이 모두 쉬는 브레이크 타임에 손님 한 분이 들어와 우동을 주문하더라"며 "선배들이 없으니까 어깨 너머로 익혔던 우동을 만들어 처음으로 손님상에 내봤다"고 회상했다. 손님이 떠난 후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든 그릇은 국물조차 남김없이 싹싹 비워진 상태였다. "정말 행복했죠." 그때를 회상하던 임 셰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를 계기로 30세에 창업에 뛰어들었다. 자본이 없던 탓에 하루 매출 5만원 미만이던 지하 자리에 첫 중식당 '아량'을 열었다. 업자들 사이 '목 안 좋은 자리'였지만 맛집 소문이 나면서 '대목 자리'가 되는 데 1년 8개월이면 충분했다. 그는 첫 가게에서 모은 돈으로 지상 1,2층 50평 넘는 건물을 임대해 가게를 옮기고 7년여간 운영했다. '아량'은 2021년 새로 연 프리미엄 중식당 '도량'에 집중하려 지난 4월 문 닫았다. 대신 '아량'의 요리는 '도량'에서도 맛볼 수 있게 했다.
서촌에 위치한 그의 중식당 '도량' /사진=김소연 기자
임 셰프는 "밤 12시30분 경, 다른 팀은 메뉴를 정하고 장보기까지 마친 상황인 방출돼 메뉴 고민도 못 한 상태였다. 원래 양고기 요리를 하려 했는데 재료를 못 구해서 동파육을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시간이 없어 각자 잘 하는 메뉴를 하기로 했고, 지인 가게를 통해 어렵게 새벽 3시경 재료를 구해 재료 손질부터 조리까지 마친 시간이 오전 10시30분. 레스토랑 미션은 이들이 준비를 마친 30분 후인 11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숨가쁘게 진행된 4차 레스토랑 미션을 끝으로 더 도전하지 못했다. 그가 마지막 '두부 지옥'에 도전했다면 어떤 요리를 선보였을까?
임 셰프는 "두부 요리는 자신이 있다. 뭐든 할 수 있다"면서 "두부는 중식에서 많이 쓰는 재료"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흑백요리사 시즌2에 재도전하진 않을 계획이라고 했다. 식당과 현재 맡은 프로그램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임태훈 셰프가 1라운드에 선보인 팔보완자./사진=임태훈 유튜브 캡처
흑백요리사 속 가장 맛보고 싶은 요리로는 최현석 셰프의 '미역국'을 꼽았다. 흑백요리사는 모든 음식을 심사위원 외에는 맛보지 못하도록 폐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셰프는 "미역국 재료로 저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기발하게 요리를 풀었고 너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고 말했다.
그가 어릴 때부터 즐겨 찾던 음식점도 소개했다. 임 셰프는 "아현동에 '북성해장국'을 초등학교 때부터 다녔다"면서 "꼭 곰탕을 먹는데, 어릴 적 집이 어려웠을 때 한 그릇 먹으면 따뜻하고 아주 배불렀던 기억이 난다. 추억의 음식이어서 지금도 자주 찾는다"고 했다.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흑백요리사 출연 후 친해진 강승원 셰프(트리플스타) 등에게 서양요리도 배우고 있다"는 임 셰프는 후학 양성의 꿈도 내비쳤다. "약 7년 후 이 가게를 접고 혼자 운영할 수 있는 조그만 식당을 하려고 한다. 그때는 퇴직한 분들이나 가정환경이 안 좋거나, 보육원 출신인 친구들에게 중식 요리를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