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대신 흙 밟으며 '킁킁'…'댕댕이 출입' 청계천 가보니[르포]

머니투데이 김지은 기자, 김선아 기자 2024.10.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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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까지 '청계천 반려견 산책' 허용…"아기 신발에 배변" 비판 목소리도

지난 21일 서울 성동구 황학교 아래 산책로에서 만난 견주들은 모두 배변봉투를 갖고 있었다. /사진=김선아 기자지난 21일 서울 성동구 황학교 아래 산책로에서 만난 견주들은 모두 배변봉투를 갖고 있었다. /사진=김선아 기자


"강아지요? 하루에 90마리는 와요."

지난 21일 오전 10시쯤 서울 성동구 황학교 아래 산책로. 서울시설공단 청계천 관리처 직원 박모씨는 분주하게 이곳 저곳을 살피며 이렇게 말했다. 청계천 상류부터 하류까지 약 2㎞ 구간이 그가 관리하는 구역이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부터 물 속에 빠진 비닐봉투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친다.

최근 박씨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산책 나온 반려 동물이 몇 마리인지, 배변 관리는 제대로 되고 있는지, 맹견은 입마개를 했는지, 목줄은 착용했는지 꼼꼼하게 살펴보는 일이다. 서울시가 지난달부터 청계천 일부 구간에 반려 동물 출입을 허용하면서다.



3주 넘게 반려 동물을 관리하면서 눈에 익은 반려견도 많아졌다. 그는 "똑같이 보여도 개들도 다 특징이 있다"며 "반려 동물이 등장하면서 이곳 분위기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커피 대신 배변봉투, 눈치 보지 않고 산책… 달라진 풍경
반려견 감자가 지난 21일 서울 청계천 산책로를 돌아다니는 모습. /사진=김선아 기자반려견 감자가 지난 21일 서울 청계천 산책로를 돌아다니는 모습. /사진=김선아 기자


오는 12월30일까지 황학교 하류부터 성동구 중랑천 합류부까지 약 4.1km 구간에 반려견 출입이 가능해졌다. 그동안 청계천은 서울시 조례에 따라 반려동물 출입이 금지됐다. 산책하는 인구는 많은데 보도 폭이 좁아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어서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왜 반려견 출입이 안되느냐"는 민원이 이어졌다.

시범 운영 기간에 청계천을 이용하려면 반려견은 길이 1.5m 이내 목줄을 착용해야 한다. 맹견은 입마개가 필수고 개물림 사고 발생 시 견주 책임이다. 배변 역시 견주가 직접 처리해야 한다. 관련 조치를 어기면 현장 계도가 진행된다. 불응하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반려견 뚜비가 지난 21일 서울 청계천 산책로를 돌아다니는 모습. /영상=김선아 기자반려견 뚜비가 지난 21일 서울 청계천 산책로를 돌아다니는 모습. /영상=김선아 기자

청계천에 반려동물이 등장하면서 주변 풍경도 달라졌다. 견주들은 다른 길로 우회해 돌아갈 필요가 없어졌다. 사람들마다 한 손에는 목줄과 배변 봉투가 있었다. 평소 아스팔트 위에서 산책했던 개들은 청계천 풀과 흙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녔다.

이날 산책로에서 만난 시바견 '감자' 역시 풀 냄새를 맡느라 분주했다. 견주 김모씨는 목줄과 검정색 배변 봉투를 챙겨 나왔다. 그는 "주변에 고가다리가 있어서 햇빛이 가려져 산책하기 딱 좋다"며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나온다"고 말했다.



반려견 '뚜비'와 산책을 나온 노모씨는 겨울에도 이곳을 찾을 예정이다. 노씨는 "겨울에는 도로에 염화칼슘이 녹아서 먼지랑 섞이는 경우가 많다"며 "청계천 산책로는 그런 걱정을 안해도 돼서 좋다. 강아지들이 안전하게 움직이기도 좋다"고 말했다.

배변 처리, 야생 동물 우려 목소리… 서울시 "내년 시행 여부 검토"

청계천 산책로 중간에 "너구리 출몰 지역"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적혀있다. /사진=김선아 기자 청계천 산책로 중간에 "너구리 출몰 지역"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적혀있다. /사진=김선아 기자
일각에서는 비판적 목소리도 나왔다. 17개월 손녀와 함께 자주 산책한다는 주부 허모씨는 "유모차 바퀴나 아기 신발에 배변이 묻으면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청계천 일대에 야생 너구리가 출몰하면서 안전에 대한 우려도 있다. 청계천 산책로 일대에는 '너구리 출몰 지역' '만지거나 접근하지 말라' '먹이 주지 말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30대 직장인 김씨는 "밤에 너구리가 개를 보고 갑자기 튀어나온 적이 있다"며 "소리 지르면서 뛰어오는데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내년에도 청계천 일부 구간에 반려동물 출입을 허용할지 검토 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갈리는 부분이라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있다"며 "쾌적한 산책 환경을 위해 반려인들이 '펫티켓'을 잘 지키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계천 동물동반 출입 기준 안내문. /사진=김선아 기자청계천 동물동반 출입 기준 안내문. /사진=김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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