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전공의 모집을 알리는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다./사진=(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전공의=염전 노예22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의사 전용 커뮤니티에 '악랄한 착취의 삼각형'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이 글에서 "몇 년의 근무 후 얻게 될 자유와 목돈 등을 미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전공의는 염전 노예와 완벽히 동일한 구조"라며 "그간 고성, 폭행, 욕설, 부조리로 얼룩졌던 '수련'을 겪은 전공의 대다수는 교수들에게 이를 갑절로 돌려주고 싶어 한다"고 '스승'을 비판했다.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 생활관 출입문이 열려있다./사진=[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작성자는 교수 월급에 교육 수당이 포함됐지만, 수년간 당직과 잡일만 시켜 전공의를 '불구'로 만들고 진작 해야 할 교육을 명분으로 또다시 전임의(펠로)라는 '노예'를 만들어 각 연차, 개월별로 가르쳐줄 내용을 지정했다고 고발했다. 최근 늘어나는 PA(진료 지원) 간호사에 대해서도 전공의의 교육 기회를 박탈하고, 전문의 수요를 줄여 처우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꼬집었다. 작성자는 이 역시 "전공의보다 당장 편한 PA를 우선시하는" 의대 교수에게 책임이 있다고 적었다.
분출되는 사제간 갈등사제 간인 전공의와 의대 교수들의 반목은 전공의 복귀율로 확연히 드러난다. 병원장을 필두로 의대 교수들이 꾸준히 복귀를 호소했지만 지난 18일 기준 211개 수련병원 전공의 전체 출근율은 8.7%(1만3531명 중 1176명)에 불과하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의대 교수 단체가 전공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두고 옹호해왔지만, 전공의들은 요지부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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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근무 현황/그래픽=이지혜
의사 세대 간 갈등이 수면위로 부상한 지는 사실 오래됐다. 지난 4월 전공의 대표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SNS(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 방아쇠로 작용했다. 그는 당시 의대 교수를 '착취 사슬의 중간관리자'로, 수련병원을 '의정 갈등의 무고한 피해자 행사'한다고 표현한 기사를 공유하며 "두 개의 축, 그리하여"라고 비판했다. 이달 초에도 박 비대위원장은 "환자가 사망했음에도 사망 선언은커녕 자느라 들여다보지도 않은 의사는 누구입니까. 진료할 수 있음에도 전공의 부재를 핑계로 수용 거부한 의사는 누구입니까"라며 병원에 남은 교수를 '저격'하는 글을 재차 올렸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사진=(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한 대학병원 교수는 박 비대위원장의 SNS에 "자기 지지 세력에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은 윤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실망이다"며 "사제 간이 아닌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 관계라면 더 이상 전공의를 교수들이 지지할 필요가 없다"고 적기도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외과 교수 A씨는 "교수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하게 '이제 도제식 교육은 끝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신뢰가 금이 간 상태"라며 "전공의를 보호하고자 하는 생각은 같지만 방법이 다를 수 있지 않나. 의사라면 모두 자기의 주장에 동조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전공의 대표의 생각이 '의료계 블랙리스트'를 등장케 한 배경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공의가 독자적으로 의료사태를 해결할 수도 없고, 정부와 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하기엔 시간이 너무 지났다. 이런 상황에서 의협, 의대 교수와 척지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강경 입장을 고수하기보다 협의, 소통하며 해결 방안을 찾는 게 현명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