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 퍼붓고 얼굴에 침 뱉어도…'경찰의 날' 꺼지지 않는 지구대 불빛[르포]

머니투데이 김지은 기자, 이혜수 기자 2024.10.2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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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경찰의 날 앞두고…새벽 서울 지구대·파출소 가보니

해당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경찰이 주변 순찰 나서는 모습. /사진=김지은 기자해당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경찰이 주변 순찰 나서는 모습. /사진=김지은 기자


"그 놈이 제 휴대폰 가져갔다니깐요."

지난 18일 동이 트지 않은 새벽 시간. 30대 여성이 비틀 거리며 서울의 한 지구대 안으로 들어갔다. 전날 저녁부터 밤샘 근무를 한 경찰 두 명은 자리에 일어나 이 여성을 맞았다.

술에 취한 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제 휴대폰, 휴대폰을 가져갔다"고 말했다. 경찰이 자초지종을 묻자 그는 "남자친구가 술 먹다가 '휴대폰 잡아봐라' 하면서 갑자기 가져갔다"고 했다.



경찰은 남자친구라는 이에게 연락했지만 정작 그 남성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여성은 연신 욕을 퍼부었다. 여성은 "휴대폰도 없는데 XX 짜증나네"라고 하더니 진술서를 작성하고 갔다.

한숨 돌리는 사이 이번에는 20대 남성이 지구대 안으로 들어왔다. 술에 취한 남성은 "지방에서 올라왔는데 술 마시다가 짐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경찰은 술 취한 남성에게 기억나는 장소가 어딘지 묻고 또 물었다.



밤샘 근무에 각종 민원 처리…구슬땀 흘리는 경찰들
현장 경찰관들이 교통 안전을 위해 시민들 안내하는 모습. /사진=김지은 기자현장 경찰관들이 교통 안전을 위해 시민들 안내하는 모습. /사진=김지은 기자
21일 경찰의 날을 전후해 현장에서 만난 경찰들은 밤샘 근무하며 각종 사건 사고를 처리하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서울 관악구의 한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A 경위는 최근 자살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신고자로부터 얼굴에 침을 맞았다. 그는 땀과 함께 침이 얼굴에 흘러내리는데 자괴감을 느꼈다고 했다. A 경위는 "사람을 대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주취자 구토, 대소변을 받아내거나 정신질환자에게 욕설을 듣는 일도 부지기수다. 30년 넘게 경찰 근무를 한 B 경감은 젊은 사람에게 온갖 욕을 들었다. 그는 "처음 본 사람한테 그런 소리 들으면 화나지만 일단은 꾹 참는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한 지구대 문 앞에는 도어락과 초인종도 설치됐다. 범죄자가 보복하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C 경감은 "2년 전에 칼을 들고 온 사람도 있었다"며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 매번 긴장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공무집행방해 사건 검거 건수는 지난해 기준 1만25건으로, 이 중 9346건이 경찰을 상대로 발생했다. 형법 제136조에 따르면 정당한 공무를 집행하는 경찰관 등에 대해 폭행이나 협박을 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경찰들이 서울 종로구 일대를 순찰하는 모습. /사진=김지은 기자경찰들이 서울 종로구 일대를 순찰하는 모습. /사진=김지은 기자
상담 건수는 늘어나는데… '마음동행센터' 전국에 18곳

경찰청은 2014년부터 각종 사건 사고로 어려움을 겪는 경찰을 위해 트라우마센터(마음동행센터)를 열었다. 10년이 지났지만 이용자에 비해 시설과 인력은 부족한 수준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마음동행센터를 이용한 경찰은 2019년에 6183명에서 △2021년 9940명 △2022년 1만4218명 △2023년 1만8962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상담건수도 3만8199건으로 전년(2만5974건)보다 47.1% 늘었다.

현재 마음동행센터는 전국 18개 시도청에 18곳 운영 중이다. 서울은 보라매병원과 경찰병원 2곳이고 나머지 지역에는 각각 1곳씩 운영하고 있다. 세종시에는 한 곳도 없다.

경찰 관계자는 "업무 특성상 경찰이 다른 직업군에 비해 트라우마를 많이 겪는 편"이라며 "앞으로 5년 동안 단계적으로 마음동행센터를 늘려나가는 등 경찰의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도록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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