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트래킹주식

머니투데이 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2024.10.23 02:03
글자크기
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2014년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주식시장 발전방안에 '트래킹주식'이 포함된 적이 있다. 트래킹주식이란 상장기업의 우량 사업부나 자회사 실적에 따라 이익배당 청구권과 잔여재산 분배 청구권이 정해지는 주식이다. 미국 등이 도입한 제도인데 실적이 좋은 사업부나 자회사만 분리해서 상장해 더 많은 배당금으로 투자자를 유인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방안으로 거론됐다. 당시 금융위는 "트래킹주식이 기업 자금조달에 유용한 것으로 평가되나 국내 발행실적은 없고 명문규정이 없어 법적 근거가 불확실하다"며 도입을 "우선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었다. (2014년 11월26일 금융위의 '주식시장 발전방향' 참고)

트래킹주식은 그 이전 주로 M&A 수단, 혹은 주요 경영진에게 더 많은 스톡옵션을 제공하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닷컴버블 시기에 크게 성행했다고 한다. 기존 대형회사들이 닷컴버블을 맞아 고성장하는 사업부를 트래킹주식으로 상장해 자금을 조달하려고 했다. 트래킹주식을 상장한 대표적 회사들이 월트디즈니나 AT&T, 스프린트라는 점이 이러한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위키피디아나 퍼플렉시티로 검색하면 상당히 많은 미국 시장의 트래킹주식 사례를 찾을 수 있는데 거의 대부분 앞의 회사들과 유사한 사례다. 지금도 여전히 트래킹주식을 활용하는 회사로는 미디어그룹인 리버티 정도가 언급된다.



트래킹주식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모회사 주주들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상장 이후 모회사에 준하는 엄격한 공시의무가 따라온다. 위 금융위 자료에 따르면 일본 도쿄증시의 경우 '자회사 연동 배당주'만으로 발행을 제한한다고 한다. 많은 경우 트래킹주식 발행 자체가 제한되는데 대만 증권거래소의 경우 상장신청 시점에 모회사 및 특수관계인이 70% 이상 보유하고 있으면 상장을 신청할 자격이 없다. 트래킹주식의 80% 내외를 모회사가 보유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만에선 트래킹주식 상장이 불가능한 셈이다.

개인적으로 트래킹주식을 처음 접한 것은 CFA시험을 준비한 2000년 즈음이었다. 2000년 근방에는 아직 한국 기업집단들의 순환출자가 문제가 됐을 때고 지금은 사라진 '자사주의 마법'을 이용한 지주회사 설립이 시작되기도 전이었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자본시장에 대해 공부하던 때라 더욱 관심이 갔다. 하지만 이미 미국에선 회사들이 트래킹주식을 상장폐지하고 있었다. 나중에 금융위에서 나온 트래킹주식 언급을 보고도 지나쳐버렸다. 그 이후 논의가 어떻게 됐는지는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수많은 검토와 입법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상 추진한 정책이 모두 실제 적용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 주식시장엔 어쩌면 비슷한 개념이 이미 일반적인지도 모른다. 시가총액 25위 내 대형종목들을 살펴보면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81.84% 보유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74.28%를 갖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포스코퓨처엠을 59.7% 보유했다. 상위 25개사로 한정하더라도 지분관계의 그물망에 포함되지 않는 회사는 네이버나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HMM 정도로 손에 꼽는다. 어쩌면 이제는 트래킹주식은 지극히 한국적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이 문제를 '중복상장'이라고도 하는 것 같다.(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