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대체시험법 발의 활발.. 신약개발·생체모사칩 '시너지'

머니투데이 이유미 기자 2024.10.23 16:08
글자크기
최근 국회에서 동물대체시험법 관련 법안 발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며, 신약 개발 시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남인순 의원,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지난 6~8 월 사이 각각 발의한 법안들은 △신약 개발 △화학물질 평가 △화장품 산업 등에서 동물실험을 줄이고 대체시험법을 체계적으로 도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바이오 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8월 한정애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보급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은 동물실험을 대체하는 시험법의 개발·보급을 촉진하는 체계를 마련하고, 정부가 관련 연구를 적극 지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지난 7월 임이자 의원이 발의한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첨단 생체 모사 기술을 동물 대신 화학물질 안전성 평가 및 독성 시험에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남인순 의원의 경우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보급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안'을 통해 동물실험의 윤리적 문제에 초점을 두고, 대체 시험 법의 적용으로 생명과학의 발전과 인간 건강을 보호하는 법안을 냈다.

동물대체시험으로 부상한 '생체모사칩'..생명윤리·경제성 모두 충족
무분별한 동물시험은 생명 윤리 차원에서도 문제가 되지만 일부 전문가는 동물과 인간의 '생리적 차이' 등을 근거로 동물실험의 효과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인간 임상시험 결과와의 일치율을 높인 '인체 모사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윤리적 기준뿐 아니라 신약 개발 시 의약물 반응 및 독성 평가의 정확도와 효율을 높일 수 있어서다.



실제 유럽연합(EU)은 REACH(화학물질의 등록·평가·허가 및 제한) 규정을 선제 도입하고, 2013년부터 화장품에 대한 동물실험을 금지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2023년 1월부터 신약 승인 시 동물실험의무조항을 삭제하고 '생체모사칩'(Organ-on-a-Chip)을 대체 기술로 채택했다. '생체모사칩'은 실제 인체 장기의 미세구조와 생리적 환경을 인공적으로 재현한 시스템이다. △약물 개발 △독성 평가 △질병 모델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인체 환경 모사로 동물실험에 따르는 비용 및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23년 1억1170만달러(약1485억원)로 2024년까지 매년 35%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찌감치 동물대체시험에 관심을 둔 북미 및 유럽 지역에서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미국의 'Tox21' 프로그램이 그 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 △국립보건원(NIH) △국립과학재단(NSF)이 공동으로 추진 중인 대규모 협력 프로젝트로, 전통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화이자'와 '존슨앤드존슨', '머크' 등 글로벌 제약사도 신약 개발 과정에서 '생체모사칩'을 활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장기 모델링 기업 에뮬레이트(Emulate)의 경우 신약 개발에 큰 리스크로 작용하는 '간독성 반응'을 생체모사칩으로 예측하며 여러 제약사와 협력 중이다. 독일 티스유즈(TissUse)는 생체모사칩을 활용, 신약 후보 물질 초기 평가를 진행했는데 실제 임상 시험 단계로 넘어간 사례가 있다.


국내 생체모사칩 상용화 촉진 기대.. 휴먼에이스, "
휴먼에이스는 생체 모사칩 원천 기술을 확보한 국내 기업이다. 이 회사가 개발한 심장·간 모사 칩은 국내 제약회사·대학·정부연구소 등의 약물 안전성 평가에 쓰인다. 안정성 문제로 퇴출되는 약물 80%가 심장·간 독성에 의한 것인 만큼 생체 모사칩 쓰임새가 다양하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또 췌장·간암 미세환경모사칩 등의 '질병 모델링칩' 개발, 세브란스병원 및 분당차병원에 '항암제 효능 분석서비스'를 제공한 바 있다. 동국대 연구팀과는 알츠하이머 모델링 칩을 공동 개발 중이다.

고성호 휴먼에이스 대표는 동물대체시험의 중요성과 생체모사칩 기술의 잠재력에 대해 강조했다. 고 대표는 "미국 FDA 보고에 따르면 동물실험과 임상실험 결과의 불일치율이 92%"라며 "혁신적 생체모사칩 플랫폼으로 건강하게 장수하고자 하는 인류의 꿈이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관련 제도 마련 및 연구비 지원 증액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3년 12월부터 의약품 품목허가나 임상시험 계획승인을 위해 제출하는 독성 자료를 '미세 생리 시스템'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고시를 개정한 바 있다. 지난 4월 동물실험 최소화를 위한 비임상시험 자료의 제출을 허용하고, 판매증명서의 제출 면제 기준 등에 대한 개정안을 상정했다. 과거 법적 근거가 미비해 해당 산업 지원에 한계가 있었지만, 생체모사칩 상용화를 촉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속속 마련되면서 관련 업계 또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상황이다.

고 대표는 "2023년 FDA가 신약 승인 과정에서 동물실험 의무조항을 삭제한 것을 필두로 식약처에서도 발 빠르게 고시를 개정하며 제도적 뒷밤침을 시작했다"면서 "이 같이 제도적 미비점이 보완된다면 생체모사칩과 같은 대체시험 기술이 보편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동물대체시험법 관련 법안들의 제정은 바이오 및 제약 산업의 미래 비전을 구체화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생체모사칩 도입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비 절감 뿐만 아니라 국내 시장 성장도 이룰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