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편의점 접근권 방치했다"...'입법부작위' 국가배상 인정될까

머니투데이 박다영 기자, 정진솔 기자, 송정현 기자 2024.10.2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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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대법원으로 간 '한뼘의 장벽']②

편집자주 누군가엔 한뼘에 불과한 문턱이 어떤 이에겐 매순간 극복해야 하는 장벽이다. 흉내만 낸 경사로에 쩔쩔매는 유아차와 노인, 휠체어를 보면서 우린 어느 만큼의 사회적 비용을 감내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진다. 대법원이 이 문제를 두고 3년만에 공개변론을 연다.

"국가가 편의점 접근권 방치했다"...'입법부작위' 국가배상 인정될까


대법원이 23일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열고 "국가가 편의점 접근권을 방치했다"며 장애인과 유모차 이용자, 노인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공개변론을 연다.

2021년 6월 이후 3년여만이자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이뤄지는 첫 공개변론이다. 그만큼 장애인과 임산부,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편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번 사건에서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되면 낙태법 등 입법 공백이나 지연이 일어나고 있는 사안에 대해 국가 상대 배상 청구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이 사건의 쟁점은 국가가 장애인 관련법 시행령에서 '편의시설 설치 의무 기준'을 지나치게 낮게 잡아 장애인·유모차 이용자·노인 등 이용자들이 손해를 봤는지 여부다. 대법원은 국가가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규정한 시행령을 장기간 개정하지 않은 사실이 입법자의 부작위(해야할 일을 하지 않음)라 위법한지, 이 행위가 위법하더라도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해야 하는지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법 시행령은 1998년 제정 당시 지체장애인 등을 위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소규모 소매점 범위를 '바닥면적 합계 300㎡(약 90평) 이상의 시설'로 규정했다. 그러나 전국 편의점 중 바닥면적이 300㎡를 넘는 편의점은 3%에 불과(2019년 기준)해 실질적으로 이용자들의 접근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지체장애인 김모씨 등 4명은 2018년 이 조항과 관련해 "접근권이 침해된다"며 GS리테일·호텔신라·투썸플레이스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사건을 강제조정에 넘겼고 호텔신라와 투썸플레이스는 원고의 요청을 받아들여 조정이 성립됐다. 조정에 불복한 GS리테일에 대해 재판부는 2009년 4월 이후 신축·증축한 편의점에 이동식 경사로 등을 설치하라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국가의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으나, 원고들은 국가 배상을 재차 주장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국가가 시행령을 장기간 개정하지 않고 방치한 행위는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요건인 고의나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려워 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해당 시행령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2022년 4월에야 개정돼서 '바닥 면적 50㎡(약 15평) 이상 점포'까지 편의시설 설치가 의무화됐다. 원고들은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했다.


원고 승소한다면 '입법 부작위에 따른 국가배상' 첫 사례
(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해 있다. 2024.7.18/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해 있다. 2024.7.18/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원고들은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국가가 장애인 등의 접근권을 침해해 위헌·위법한 규정을 장기간 방치한 것이 국가의 과실이라고 주장할 예정이다.

원고 측을 대리하는 한상원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원심에서 위헌·위법해 무효인 시행령을 제정하고 장기간 방치했음에도 과실조차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일반인의 관점에서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변론 종결 후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토론을 거쳐 향후 2~4개월 내에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원고들의 청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입법 부작위에 따른 국가 배상을 인정하는 첫 사례가 된다.

최초록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국가 배상을 본격적으로 다퉈 인정받는 것이 목표"라며 "(이번에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결과가 나오면) 법원의 첫 걸음이라는 상징으로 의미있는 판결이 될 것"이라고 했다.

법원은 장애인·노인 등이 일상의 장벽을 낮춰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추세다.



앞서 장애인·노인·영유아 부모 등 5명이 2014년 "저상버스를 도입하고 시외버스·고속버스에 휠체어 승강 설비를 설치하라"며 국가·서울시·경기도와 금호고속·명성운수를 상대로 낸 차별 구제 소송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운수업체가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 편의제공 의무 위반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유예기간 없이 즉시 모든 버스에 휠체어 승강시설을 설치하라고 명령한 원심 판결이 비례원칙에 어긋난다며 이 부분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1·2급 시각장애인 963명이 SSG닷컴·이베이코리아·롯데쇼핑을 상대로 "정보 이용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며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재판부는 1심과 동일하게 쇼핑몰들이 시각장애인들에 대해 차별 행위를 하고 있다고 판단한 사례도 있다. 2심 재판부는 화면 낭독기를 통해 시각장애인에게 광고와 상세 내용 등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라고 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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