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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 없는 드라마라니, 이렇게 신선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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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실력과 노력으로 매력 십분 발휘하는 젊은 배우들
주인공 정년이를 맡은 김태리는 데뷔 이후 한 번도 믿음을 배신한 적 없는 확신의 ‘믿보배’다. 그런 김태리가 윤정년이 되기 위해 소리는 물론이요, 춤과 국극 연기, 사투리까지 3년을 준비했다. 그 준비와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정년이’에서 김태리의 소리는 대역 립싱크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이질감없이 자연스럽다. 물론 시청자 대부분이 소리를 잘 모르는 문외한이긴 하지만, 우리 모두 흥이 있는 한민족 아니던가. 들어서 어색한 정도는 캐치할 수 있단 말이지. 김태리뿐 아니라 라이벌 허영서 역의 신예은 또한 가히 라이벌다운 소리를 낸다. ‘더 글로리’의 어린 박연진 역으로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신예은은 국극단 연구생 중 ‘성골 중 성골’로 불리는 이답게 소리면 소리, 연기면 연기,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엘리트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줬다. 연구생 자선공연에서 방자 역을 맡게 된 정년이 제대로 연기를 하지 못하자 시범을 보이는 영서의 모습은 압권. 도도한 얼굴에서 순식간에 깨방정 느낌의 방자 얼굴로 갈아 끼울 때 놀랐던 시청자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신예은의 대표작이 ‘더 글로리’에서 ‘정년이’로 바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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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소리 천재인 정년이가 문옥경에 의해 국극의 세계에 들어서고, 그 세계에서 이미 뚜렷하게 인정받고 있는 정반대 포지션의 허영서와 라이벌 기류를 형성하는 ‘정년이’ 1, 2화를 보면 자연히 생각나는 작품이 있다. 바로 엄마와 딸이 함께 본다는 미우치 스즈에의 만화 ‘유리가면’. 1976년부터 연재한 만화 ‘유리가면’은 연극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연기 천재 기타지마 마야와 연극계의 금수저인 히메가와 아유미가 전설의 연극 ‘홍천녀’의 주연을 두고 경쟁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플롯만 봐도 마야에 정년이, 아유미에 허영서가 대입되지 않는가? 마야를 발견하고 혹독하게 가르치는 왕년의 대배우 츠키카게 치구사는 문옥경과 단장 강소복이 합쳐져 보이고. 연기와 연극을 소재로 한 만화 중 넘버원으로 꼽히는 ‘유리가면’의 서사에 익숙한 대중은 자연히 ‘정년이’의 서사에도 익숙하다. 라이벌 관계의 두 주인공이 흔한 선역-악역의 대립으로 그려지지 않고 경쟁하고 연대하며 둘 다 성장을 이룬다는 스토리도 그렇고,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고 무대만이 줄 수 있는 희열을 재현한다는 점도 ‘유리가면’과 ‘정년이’의 공통된 매력. 여기에 여성 국극단의 전설적 실존 인물 임춘앵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 ‘춘앵전’을 좋아한 이들이라면 그와 소재가 오버랩되는 ‘정년이’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청춘이 빚어내는 뜨거운 성장 서사를 좋아한다면, 그래서 김태리가 주연을 맡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나희도(김태리)와 고유림(김지연)의 올림픽 펜싱 대결이 선사했던 뜨거운 울림에 감격했던 이들이라면, ‘정년이’에서 윤정년과 허영서가 빚어낼 성장 서사에 기대를 걸게 될 것이다. 윤정년과 허영서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같은 천재와 범재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통해 힘껏 부서지고 깨어지며 앞으로 나아가는 성장의 관계로 그려질 것이란 점도 기대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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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의 첫 번째 OST 가창자는 ‘새타령’을 부른 이날치다. 퓨전국악밴드 이날치는 ‘범 내려온다’로 우리의 소리를 독특한 리듬과 스토리로 재해석하며 멋과 흥을 폭발시킨 밴드. 아이돌 노래가 주류를 이루는 마당에 누가 케케묵은 우리 판소리를 듣겠냐는 의심은 접어두자. 이미 국악, 판소리는 스멀스멀 우리 사이에서 힙해진 경험이 있다. 국악인 이희문을 필두로 한국 전통 음악을 기반으로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 컬트적 인기를 끌었던 퓨전 국악 음악 그룹 씽씽도 있었고, 이날치의 곡에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몸짓을 더해 만든 한국관광공사의 해외홍보영상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 시리즈가 국내외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린 경험도 있다. 이외에도 황해도 민요를 기반으로 한 굿음악을 현대적으로 만드는 악단 광칠, ‘슈퍼밴드2’에 나와 거문고 줄을 자르며 우리 전통 악기로 전위적 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도 톡톡한 인기를 끌었다. 아마 ‘정년이’를 보면서 ‘추월만정’이나 ‘남원산성’ ‘사철가’가 무슨 노래인가 찾아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국인의 DNA에 새겨진 우리 소리에 대한 무의식적 호감이 ‘정년이’에서 다채롭게 등장할 한국 전통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뻔할 수 있는 왕실 로맨스를 섬세하게 그려낸 정지인 PD의 연출력이 우리 소리의 매력을 어디까지 극대화할 수 있을지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