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무교동의 교차로에 설치된 '적색 잔여 시간 표시 신호등'. 대기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 숫자로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사진=김선아 기자
지난 17일 오후 1시쯤 서울 중구 무교동 한 교차로. 흰 와이셔츠에 검은색 자켓을 입은 남성이 횡단보도 쪽으로 빠르게 뛰어왔다. 그는 신호등에 적힌 빨간 숫자를 보고 자리에 멈춘 뒤 입술을 깨물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제자리에서 몇 번이고 줄어드는 숫자를 바라봤다.
그는 "미팅이 있는데 늦어서 지각할 것 같다"며 "곧 초록색 불로 바뀐다고 하니까 기다리는 중이다. 평소 같으면 마음이 급하니까 무단횡단 했을 텐데 10초 남았다고 하니 참았다"고 말했다.
"50초 남았네" 짧은 순간에… 몸도, 이동도 편해졌다
서울 중구 무교동의 교차로에 설치된 적색 잔여 시간 표시 신호등. 대기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모습. /영상=김지은 기자
해당 신호등은 빨간색 불이 사라지기 6초 전까지만 알려준다. 보행자들이 신호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고 급하게 횡단보도를 뛰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날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보행자를 살펴본 결과 움직임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50대 자영업자 박금수씨는 빨간색 숫자가 '20, 19, 18'로 줄어드는 것을 보고 한 쪽에 짐을 내려놨다. 지친 몸을 기둥에 걸터 앉고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다. 그는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아니까 잠깐이라도 짐 내려놓고 편하게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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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일대에 설치된 적색 잔여 시간 표시 신호등. 시민들이 남은 대기 시간을 보며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김선아 기자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날 자녀와 함께 경복궁에 방문한 이성연씨(41)는 "아이들은 신호가 길면 금방 지루해한다"며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면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나간다. 숫자 표시가 있으니까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고 참게 된다"고 말했다.
40대 이희령씨는 빨간색 불이 40초 정도 남은 것을 확인하더니 쓰다 만 문자메시지를 적었다. 그는 "평소 휴대폰을 볼 때 신호가 바뀌는지 힐끔힐끔 봐야 해서 불편했다"며 "시간 여유가 있으니까 편하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올해 말까지 350개소에 추가 설치 예정"
서울 광화문 일대에 설치된 적색 잔여 시간 표시 신호등. /사진=김선아 기자
해당 신호등은 올해 상반기 서울시 적극행정 우수사례에 뽑히기도 했다. 2020년 도로교통공단 조사에 따르면 적색 잔여 시간을 표시한 신호등을 도입한 결과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이 약 46% 감소했다. 빨간색 신호등을 바라보는 보행자도 9.4% 증가했다.
서울시는 올해 말까지 총 350개소에 적색 잔여 표시 신호등을 추가 설치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보행자 통행이 많은 곳을 비교해 선정할 예정"이라며 "어린이 보호구역도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