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먹는 고통"…매년 1만명 숨지는 '이 병' 고치려 직접 나선 환자[월드콘]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24.10.1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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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식장애 치료 스타트업 이큅, 1.1억달러 투자 유치…
지난해 매출 3500만달러, 올해는 두 배 '점프' 예상

편집자주 전세계에서 활약 중인 '월드' 클래스 유니'콘', 혹은 예비 유니콘 기업들을 뽑아 알려드리겠습니다. 세상에 이런 게 있었나 싶은 기술, 이런 생각도 가능하구나 싶은 비전과 철학을 가진 해외 스타트업들이 많습니다. 이중에서도 독자 여러분들이 듣도보도 못했을 기업들을 발굴해 격주로 소개합니다.

섭식장애 치료 스타트업 이큅을 창업한 크리스티나 샤프란(오른쪽)과 에린 파크./ 사진=이큅 홈페이지 갈무리섭식장애 치료 스타트업 이큅을 창업한 크리스티나 샤프란(오른쪽)과 에린 파크./ 사진=이큅 홈페이지 갈무리


"딸에게 식사는 거미와 뱀을 한 접시 먹는 것과 같다.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다."

자녀가 섭식장애를 앓고 있다는 수 챔버스(가명)는 지난 8월 포브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딸을 입원시키기가 무서웠다"며 집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가족기반치료(FBT)를 선택했다는 그는 집에서 섭식장애를 치료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섭식장애 자녀를 둔 다른 엄마로부터 스타트업 '이큅'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이큅이 연결해준 전문가 팀의 치료를 18개월 진행한 덕분에 딸 체중은 안정권에 들어왔다. 챔버스는 이큅이 딸의 생명을 구했다면서도 심리치료까지 완료되려면 이큅과 갈길이 아직 멀다고 설명했다.



이큅은 섭식장애 환자였던 크리스티나 샤프란이 2019년 창업했다. 우울증, 강박 장애 등 가족력이 있던 샤프란은 어릴 적 만난 베이비시터를 따라 다이어트를 하다 섭식장애를 앓게 됐다. 10살 때 진단을 받고 병원 치료를 받아도 효과는 잠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섭식장애로 고통받았다. 포기하지 않고 FBT를 택한 가족들 덕분에 정상 체중을 되찾았지만 그때 고통은 아직 선명하다. 샤프란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절이었다"라고 회고했다.

미국 최고 병원 중 하나로 꼽히는 메이오클리닉에 따르면 섭식장애는 마약성 진통제 중독에 이어 두 번째로 사망률이 높은 정신질환이다. 미국 섭식장애협회(ANAD)에 따르면 섭식장애로 매년 미국에서 1만200명이 사망한다. 미국에서 3000만명 정도가 섭식장애를 앓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20%만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그 중 20%만이 완치에 이른다고 샤프란은 설명한다.



섭식장애 치료가 어려운 건 심리치료와 함께 장기간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 또 외래는 한 달 수 천 달러, 입원치료소는 경우에 따라 하루 1000달러에 이를 정도로 치료비가 비싸다. 주변에 방문할 만한 치료소가 없어 이마저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거식증은 부유한 백인 여자들만 걸리는 병'이라는 오해도 치료를 가로막는다.

섭식장애는 한국도 문제다. 지난해 10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섭식장애로 분류돼 치료를 받은 환자 수는 2018년 8321명에서 2022년 1만2477명으로 49.9% 증가했다. 지난해 TV프로그램 '금쪽 같은 내새끼'에서 소개된 소아 거식증 환자 사례를 통해 이슈가 된 적도 있다.

샤프란은 섭식장애 환자, 특히 소아 환자들이 완치에 이르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은 FBT라고 믿는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하기 때문에 안정감이 크고, 치료를 일상생활에 녹여 장기치료로 이어가기 쉽기 때문. 문제는 FBT를 이끌어줄 전문가를 찾기가 어렵고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 샤프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8년 섭식장애 치료를 위한 모금운동 '프로젝트 힐'을 조직했다. 이 활동으로 샤프란은 2017년 포브스가 선정한 30세 미만 30인에 선정됐다. 이후 더 많은 환자들을 치료로 이끌기 위해 창업을 결정했다.


이큅은 섭식장애 전문 치료사와 소아과 의사, 영양사, 부모 멘토 등 전문가 5인으로 구성된 전담 팀을 환자와 연결, 일상생활을 관리해준다. 치료는 원격으로 진행된다. 직접 대면 치료는 전문가 방문 일정을 짜는 것부터 부담이기 때문에 원격 치료가 훨씬 편리하고 효과적이라는 게 샤프란의 설명이다. 이큅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큅을 이용한 환자 25%가 섭식장애 치료시설에서 20마일(32km) 이상 떨어진 장소에 거주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큅의 또 다른 강점은 보험사와 연계다. 이큅은 미국 최대 보험사 유나이티드케어를 비롯해 애트나, 시그나 등 25개 보험회사들과 보험계약을 맺고 5000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했다. 이큅이 올해 발간한 자사 치료 보고서에 따르면 환자 97%가 보험 혜택을 받았다. 보험계약은 이큅의 주 매출원이기도 하다. 이큅은 환자 치료를 관리하는 대가로 보험사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데, 이를 통해 지난해 3500만 달러 매출을 올렸다. 포브스는 올해 매출이 지난해보다 두 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큅이 기업가치 10억 달러를 달성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업 중 하나라고 전했다.



이큅은 올해 제너럴케이털리스트, 체르닌 그룹, F프라임 캐피털 등으로부터 1억1000만 달러 투자를 유치했다. 이큅은 저소득층·장애인들을 위한 의료 보조 제도 메이케이드를 통해 더 많은 환자들을 치료로 이끄는 게 목표라고 한다. 현재 4개 주에서 메디케이드 보조로 이큅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이 숫자를 더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이큅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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