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리스크가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사진제공=대한상공회의소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2일부터 13일까지 국내 수출제조업 448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해 17일 발표한 '지정학적 리스크 장기화 영향과 대응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중갈등·러우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를 경영 위험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는 기업이 전체의 66.3%를 차지했다. 39.5%의 기업은 '일시적 위험 정도'로 인식했지만 23.7%는 '사업 경쟁력 저하 수준', 3.1%는 '사업 존속을 위협하는 수준'이라고 답했다.
지정학적 리스크 피해 유형 /사진제공=대한상공회의소
미국, 러시아 대상 수출입 기업들은 모두 '환율변동·결제지연 등 금융 리스크' 피해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는데(미국 30.2%, 러시아 54.5%), 특히 러·우 전쟁 발발 당시 해당국과 거래하고 있던 기업들의 수출 대금 결제가 지연되거나 금융제재로 외화송금이 중단되는 피해가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서 EU(유럽연합)과 중동으로 수출입하는 기업들(EU 32.5%, 중동 38.0%) 은 '물류 차질 및 물류비 증가'를 피해유형으로 가장 많이 선택했다.해당 기업들의 경우 중동전쟁 이후 홍해운항을 중단하고 남아프리카로 우회 운항을 시작하면서 물류비 부담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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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해상운임 추이(한국→EU) /사진제공=대한상공회의소
기업들은 반복되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해 확장적 전략보다는 긴축 경영을 우선 고려하는 모습이다. 향후 지정학적 리스크 장기화에 따른 기업차원의 대응전략을 묻는 질문에 수출기업의 57.8%가 '비용절감 및 운영효율성 강화'를 꼽았다.
대체 시장 개척과 사업 다각화에 응답한 기업도 52.1%를 차지했다. 대한상의는 "수출 기업들이 지금의 해외 시장과 사업 구조가 한계를 맞이해 새로운 시장과 수단을 개척해야하는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해석했다. 이어서 기업들은'공급망 다변화 및 현지조달 강화'(37.3%), '환차손 등 금융리스크 관리 '(26.7%), '글로벌 사업 축소'(3.3%) 등의 대응방안을 차례로 지목했다.
대한상의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는 규제 정책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의 전략산업 정책 강화에 대응해 첨단산업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에도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앞으로 현실화될 수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무엇인지 식별하고, 이에 대한 경고를 우리 수출 기업들에게 적시에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공급망 훼손이 기업들의 생산 절벽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핵심 원부자재에 대한 대체 조달시장 확보 및 국산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현재 진행중인 리스크 외에도 대만해협을 둘러싼 양안갈등, 북한 핵 위협 등 향후 우리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 리스크가 상존하고 있다"며 "지정학적 리스크 발생 시 단기적으로는 유가·물류비 상승으로 피해를 입는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수출 바우처 등 정책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정부가 민관 협력을 통해 자원개발을 주도하고 핵심 원자재의 공급망 안정화에 주력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