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JTBC
이렇게 시대와 시대가 부딪치는 파열음의 한 가운데에는 이러한 흐름에 빠르게 몸을 싣는 이들도 있는 법이다. 지난 12일 첫 방송 된 JTBC 토일드라마 ‘정숙한 세일즈’는 그 사이에서 한 움큼 성장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아직 2회를 방송했을 뿐이지만, 벌써 시청률 5%의 문턱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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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2016년 영국 ITV에서 방송됐던 드라마 ‘브리프 인카운터즈(Brief Encounters)’가 원작이다. 원작 역시 보수적인 영국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파티 플래너가 되면서 그 안에서 각종 성인용품과 란제리를 팔던 네 명의 여성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시대적으로나 지리적인 배경은 다르지만, 보수적인 분위기가 팽배한 사회에서 도발적인 도전을 감행하는 여성들의 연대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정숙한 세일즈’가 시대적으로 충돌하는 1992년에다 도농복합도시인 듯 도시와 농촌의 문화가 충돌하고, 출연자들의 말투에서도 충청도와 전라도가 충돌하는 가상의 ‘금제시’를 택한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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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복은 아이만 넷인 집안에서 남편과 금실 좋게 지내지만, “가난한 집에서 금실이 좋은 것은 재앙”이라는 스스로의 말처럼 커나가는 아이들의 필요를 맞춰주고 싶은 조급함에 시달린다. 유일한 싱글로 미혼모의 삶을 즐기는 주리는, 하지만 그 때문에 싱글맘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늘 주류와는 겉도는 삶을 산다.
이는 어찌 보면 여성들의 성장서사라는 점에서 영화 ‘써니’가 떠오르기도 하고, 시대극과의 혼용이라는 점에서 2017년 KBS2에서 방송된 ‘란제리 소녀시대’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코믹의 터치를 빼놓고 나면 ‘정숙한 세일즈’의 정서는 훨씬 엄혹하다. 각자의 주인공들이 처해있는 상황은 훨씬 비참하며, 성인용품을 파는 이들 넷을 차차 조여오는 주변의 시선은 마치 정숙의 집 앞 담에 ‘SEX’를 써놓고 사라진 누군가의 폭력처럼 비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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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이처럼 시대의 틈바구니에서 어쩌면 엄혹한 시기를 버텨야 하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을 그리고 있다. 아직 초반에 이르지 않고 있는 만큼, 이들이 만들어갈 주체적인 서사가 얼마나 ‘주체적일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원작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미스터리 코드를 가진 형사 김도현(연우진)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도 관심이다. 결국 또 김도현의 위치가 한정숙이 객체처럼 보이게 한다면 본래 취지를 못 살리는 ‘용두사미’식 구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공개된 회차에서 한정숙 역 김소연은 30년 연기구력이 바래지 않는 밸런스를 보여준다. 망가질 때는 망가지면서도 감정장면에서는 확실히 몰입해 울림을 주는 모습에서는 ‘펜트하우스’에서의 광기 어린 연기 못지않은 단단함이 보인다. 또한 그와 ‘승부사’ 이후 26년 만에 호흡을 맞추는 김성령 역시 주체적인 여성서사 작품에서 자주 보였던 이미지를 선보인다.
극의 분위기를 올리면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김선영과 패기 넘치는 막내 역할의 이세희 역시 나이를 떠나 괜찮은 조합을 펼친다. 이들은 이미 제작발표회에서 “서로의 눈만 쳐다봐도 울 것 같아 연기를 못 하는” 깊은 라포를 형성했다.
JTBC의 토일드라마는 지난해 ‘힘쎈여자 강남순’부터 ‘웰컴투 삼달리’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가족X멜로’ 등의 작품을 통해 가족극의 변주를 지속적으로 시도해 왔다. 코믹 그리고 시대극, 미스터리 코드를 가미한 ‘정숙한 세일즈’가 어떤 성과를 내게 될지. 깊어가는 가을이 안방에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