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내 맘 속 이즈와 무진

머니투데이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2024.10.18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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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김동규(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이즈의 무희'와 '무진기행'을 좋아했다. 고교시절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를 읽고 일본적 탐미주의에 놀랐고 대학시절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고 바로 매혹됐다. 대학시절 문학에 무지한 나는 무진이라는 곳이 전라도 어디쯤 실재하는 줄 알고 친구에게 함께 가보자고 했다가 그것이 상상의 지역이라는 말을 듣고 놀랐다. 아마도 김승옥은 고향의 순천만을 떠올리며 무진을 그렸을 것이다.

'이즈의 무희'는 제일고등학교(도쿄제대 예과) 학생인 주인공이 도쿄 서남쪽 이즈반도 산길을 걸어가면서 우연히 만난 유랑예인단 소녀에게 품게 되는 순수한 연정을 묘사한 작품이다. 당시 유랑예인단은 일본 사회에서 천시되는 계층에 속했다고 소설은 설명한다. 순수한 청년인 주인공은 이들과 동행의 정을 나누고 소녀에겐 애틋한 사랑을 품는다. 하지만 며칠 동안의 산행이 끝나고 주인공은 도쿄로 돌아가고 소녀는 유랑예인단에 남으면서 소설은 갑자기 끝난다.



'무진기행'은 좀 더 어두운 그림을 그린다. 자욱한 안갯속처럼 답답한 무진에서 사람들은 탈출하고 싶어한다. 회사의 중역인 주인공은 잠시 회사 일을 피해 고향에 내려왔고 여기서 음악교사인 여주인공을 만난다. 주인공이 기혼자이긴 하지만 여교사는 자신을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하고 둘은 감정을 나눈다. 하지만 회사 일이 있는 주인공은 서울로 돌아가야 했고 여교사는 무진에 남는다. 여교사의 앞일에 대해서는 불안한 복선이 깔려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어둡지만 아름다운 무진이 그려진다.

우리 안에는 '이데아'라는 것이 있다. 미의 이데아가 있고, 정의의 이데아가 있고, 자동차의 이데아, 침대의 이데아가 있다. 도달할 수 없는 지극한 이상이 있는 것이다. 현실 속 그 어떤 미도, 그 어떤 자동차도 100% 만족스러울 순 없다. 이데아는 북극성처럼 방향만 제시할 뿐 도달할 수 없다. 정의의 이데아도 우리 마음속에는 있지만 그것을 향도로 삼아 노력할 뿐 그것을 실제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위험한 광기에 불과하다.



일본에서는 '이즈의 무희'의 아름다움을 영화화하는 노력을 10년에 한 번씩 해왔다. 하지만 요시나가 사유리, 야마구치 모모에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를 아무리 내세워도 소설 속 여주인공을 결코 실현할 수 없었다. '이즈의 무희'는 각 독자의 마음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이는 현실은 보이지 않는 이상을 이길 수 없다. 마찬가지로 보이는 영상은 각 독자가 읽는 소설을 이길 수 없다. 영상에는 관객의 이데아가 개입할 여백이 적기 때문이다. 정밀화처럼 빼곡하게 그려낸 미인도는 지극의 미인도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뿌연 안개 같은 '블러'로 뒤덮이고 많은 여백을 남겨 관객의 상상에 여지를 많이 남겨둔 미인도가 좀 더 만족스러운 미인도가 될 것이다. 책이 사진과 영상에 앞서는 것도 이러한 상상의 여백 때문이다. 보이는 영상은 사라질 덧없는 것을 다룰 뿐 영원함을 포착하기 어렵고 우리의 상상을 고갈시킨다. 그러니 잠시 휴대폰을 덮고 책을 펼치자. 때마침 한국문학에 경사도 있었고 가을하늘은 한창 공활하다.(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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