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경찰 '수사외압' 논란이 남긴 것

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2024.10.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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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앞에서 서울경찰청장과 일선 경찰서 과장이 충돌했다. 지난 1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감에서 벌어진 장면이다. '상관의 지휘·감독을 받아 직무를 수행하는'(경찰법 6조) 경찰관이 최고 지휘라인에 얼굴을 붉힌다. 14만 경찰 조직에 주는 메시지가 작지 않다. 상당수 경찰은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라며 고개를 떨군다. 업무에 지친 일부는 상관을 곁눈질하며 '나도 한번' 반항을 꿈꾼다.

이른바 '세관 마약연루 수사 외압' 논란을 두고 벌어진 일이다. 지난해 1월 말레이시아 운반책 6명이 필로폰 24kg을 몸에 숨겨 국내에 반입했다. 인천세관이 이들과 연루됐는데 '용산' 지시로 수사가 방해됐다는 일선 경찰서 과장의 주장이 나오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됐다. 정치권은 '제 2의 채상병 사건'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외압 논란에서 드러난 실체는 하나다. 지난해 10월 조모 당시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이 A 과장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교통과 여성, 청소년 안전 등을 담당하는 생활부장이 지휘 계통을 넘어 세관 수사와 관련된 전화를 했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조 전 부장은 행정고시를 보고 관세청을 거쳐 경찰에 들어온 인사로, '친정' 일에 참견한 모양새였지만 경찰 안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조 전 부장은 좌천됐다.

반면 A 과장은 윗선에서 '용산'을 언급하며 압박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수개월째 나타나지 않고 있다. A과장이 소속돼 있던 경찰서의 서장 등은 당시 A 과장의 수사가 '덜 됐다'고 봤다. A 과장이 주장하는 마약 조직과 인천세관 간 유착 의혹은 말레이시아 운반책 진술에 의존했는데 실제 수사팀이 조력자로 지목한 세관 직원 중 1명은 휴가였다는 게 대표적이다.



지휘 계통이 지시·감독한 것을 '외압'이라는 정치인도 있지만 경찰관은 상관의 지휘 감독을 받아 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다. 묻지마식 수사나 국민 권익 침해를 막기 위해 지휘·감독은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은 "용산이 아니면 설명이 안된다"는 주장에 혹할 수밖에 없지만 명확한 근거 없이 의혹을 펴는 건 무책임하다.

결국 외압 논란이 조명을 받으면서 대규모 마약이 국내 반입된 실체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 시간에도 사이버 도박, 텔레그램 성범죄, 일명 '헬퍼'에 의한 청소년 실종 등 강력 사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민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사건의 사실 관계와 민생 치안을 최우선으로 다뤄야 할 행정안전위원회가 정쟁으로 귀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안타깝다.

[기자수첩]경찰 '수사외압' 논란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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