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 꼭 잡아야 해?" 손 안 대도 바퀴 '휙'…게임 같은 미래의 차[르포]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2024.10.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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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만도, 중국 베이징서 트랙데이…중국 로컬기업으로 고객 다변화 전략 적중

HL만도의 MWC 시연 모습./사진=우경희 기자 HL만도의 MWC 시연 모습./사진=우경희 기자
테스트 차량 제네시스 G80 조수석에 앉아 태블릿을 넘겨받았다. 게임기 패드 같은 디자인이 활성화됐다. 조종간 부분에 양쪽 손가락을 대고 패드를 돌리니 차체가 곧바로 반응하며 좌우로 조향이 시작됐다. 영화에서나 보던 무선운전이다. 운전대를 직접 조작하는 것과는 상당한 시차가 있을 거란 예상은 빗나갔다. 응답성은 물론 조향성이 모두 곧바로 상용화해도 될 정도로 훌륭했다.



미래의 자동차는 어떤 모습일까. 100% 정확한 예측은 쉽지 않겠지만 전동화(순수전기차 등)나 수소전기차 등 에너지 전환과 자율주행 등 기술 혁신을 거쳐, 종래엔 UAM(도심항공모빌리티) 등 비행체의 순서로 흘러간다는 개념이 유력하다. 이 고비고비마다 완성차 조립 생산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부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영역이다.

국내 대표 자동차 부품기업으로, 한국 기업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시고 있는 중국에서 승승장구하는 HL만도가 14일부터 중국 베이징 시내 밀운구 R&D(연구개발)센터에서 미래 기술을 총망라한 트랙데이 행사를 진행했다. 체험 참여를 신청해 조만간 글로벌 브랜드 자동차들에 탑재될 만도의 미래 기술을 엿봤다. 상상하던 것들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꼭 앞자리 왼쪽에 운전대 있으란 법 있나
HL만도 트랙데이엔 8대의 고객사 주력차량들이 시승 차량으로 준비됐다./사진=우경희 기자 HL만도 트랙데이엔 8대의 고객사 주력차량들이 시승 차량으로 준비됐다./사진=우경희 기자


만도의 SBW(steer by wire)는 지금은 철막대와 실린더로 연결돼 있는 운전대와 바퀴를, 전선으로 연결하는 기술이다. '굳이 왜?' 싶지만 운전대 없이도 차체가 완전히 제어돼야 하는 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엔 필수다. 또 SBW엔 환경오염 주범 취급을 받던 유압실린더가 안 들어간다. 친환경 딱지가 붙어야 차를 팔 수 있는 나라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 역시 기본옵션이다.

차의 성능과 조작성 면에서도 상상이 현실이 된다. 기존엔 운전대를 돌린 정도와 그에 따라 바퀴가 돌아가는 각도가 일정할 수밖에 없었다. 전기신호로 바퀴를 돌리면 꺾이는 각도를 임의로 조정, 다양한 드라이빙 모드가 구현된다. 만도의 SBW는 개발이 거의 완료돼 조만간 출시될 고객사들의 신차에 적용될 예정이다. 글로벌 경쟁사들에 비해 한 발 앞선 행보다.

기자가 체험했던 MWC(mobile wheel control)도 이 기술의 연장선에 있다. 완전자율주행으로 달리는 자동차에 운전대가 꼭 필요할까. 없다면 그 공간에 추가 디스플레이를 달거나 짐을 더 실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비상사태가 발생하거나 직접 운전할 필요성이 생기면 곧바로 스마트폰으로 운전하면 된다. 만도의 기술을 기반으로 상상 속 모빌리티의 형태가 현실화하고 있다.


만도는 이 외에도 브레이크와 현가(서스펜션) 부문 첨단 신기술을 시연했다. 만도의 새 EMB시스템은 기존 유압브레이크와는 달리 모터에 의해 제동력을 발생시킨다. 뛰어난 제동 성능은 물론 작동 소음이 낮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쪽 바퀴가 고장났을 때 어떻게 다른 세 개 바퀴 브레이크가 차량을 제어하는지, 각종 외부변수에 따라 어떻게 현가장치가 작동하는지 여부도 시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 브랜드들도 "수출물량에 중국산 부품은...좀 그렇지?"
차량 밖에서 모바일기기로 조향장치를 움직이는 모습. /사진=우경희 기자 차량 밖에서 모바일기기로 조향장치를 움직이는 모습. /사진=우경희 기자
차에 신기한 기능이 추가되면 "저게 다 기름"이라며 혀를 차던 시대가 있었다. 원가 절감의 마른수건을 짜고 또 짜야 하는 완성차 가격결정 구조 탓에, 개발된 기능을 모두 신차에 집어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동차의 개념 자체가 곧 달라지는 시점은 다가오고, 시장은 그에 어울리는 신기술을 장착한 차가 선점할 수밖에 없다.



전기차 브랜드만 70여개에 이르는 중국에선 이런 흐름은 상식이다. 또 중국은 한국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많은 영역에서 규제가 '아예 없는' 수준이다. 자율주행을 포함한 각종 모빌리티 신기술 테스트에 최적의 장소이며, 실제 다양한 기술의 테스트베드다. 코로나19로 출국길이 막히자 만도 베이징 R&D센터 트랙은 테스트를 원하는 고객들로 문전성시였다. 그만큼 기술개발 수요가 많다.

그런 중국에서 HL만도는 쾌속 성장하고 있다. 중국에서 기록 중인 연 매출 2조원은 미주지역 매출과 맞먹는 수준이다. 모빌리티사업 총괄 조성현 대표이사 부회장은 이번 트랙데이를 포함해 올해만 네 차례나 중국을 찾아 직접 바이어를 만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만도는 중국 진출 당시 100%였던 현대차·기아 비중을 크게 줄였다. 당장 먹고 살기엔 현대차에 매달리는 게 편했지만 과감하게 고객 다변화에 나섰다. 이 판단은 적중했다. 지금은 대부분 매출을 38개에 달하는 로컬 협력사들로 채웠다. 실제 나흘간 진행된 만도 트랙데이에 참여한 중국 협력사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완성차업체는 물론 대형 포털 등 업종도 불문이다.



트랙데이 개막식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사진=우경희 기자트랙데이 개막식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사진=우경희 기자
중국산 전기차 해외 진출 확대는 만도에 새 기회다. 박영문 중국법인장은 "중국 완성차업체들은 해외 주요시장에 수출하는 제품일수록 가격이 비싸더라도 품질안전성이 높은 만도의 부품을 달아 내보낸다"고 말했다. 중국 부품기업들과는 품질 면에서 초격차를, 보쉬 등 글로벌 기업들에 비해선 보다 현지화한 영업력을 확보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만도의 중국 성과는 더 커질 전망이다. 고객사들이 공격적으로 전기차 등 매출을 늘리면서 부품 추가주문이 이어진다. 조성현 부회장은 "우리의 핵심 전략은 누가 뭐래도 고객다변화이며, 중국은 그 상징 격인 시장"이라며 "어려운 여건이지만 생존과 발전을 위해 처절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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