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전공선택제, 학생 성공 관점에서 접근하라

머니투데이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교무처장 2024.10.17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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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교무처장)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교무처장)


내년부터 신입생 넷 중 하나가 학과를 정하지 않고 대학에 입학한다. 획기적인 변화다. 그동안 대학은 '학생이 넘치는 시대'를 지내면서 공급자 중심에 취해 있었다. 학생의 요구나 사회의 수요와 동떨어진 성(城)을 쌓아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젠 다르다. 학생이 선택하는 시대가 됐다. 학과도 마찬가지다. 아직 많은 대학이 학과 정원을 유지해서 당분간 신입생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보호의 둑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고등학교 때 진로를 결정하고 관련학과로 진학해서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게 이상적이다. 그러나 고교 시절에는 대입준비에 몰두해야 하는 현실이 있고 다양한 경험과 진로탐색을 하기에 대학만큼 좋은 곳이 없다. 그런 면에서 입학 후 전공을 선택하는 정책은 바른 방향이다. 문제는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다.



먼저 크게 봐야 한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전(全)학년 교육로드맵'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어떤 대학은 전공선택제를 무전공 입학을 허용하는 새로운 입학제도 정도로 여긴다. 1학년을 담당하는 학부 대학이 고민할 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 이 제도는 학생의 '대학 경험'(total college experiences)을 학생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학습 선택권을 넓히는 교육혁신 정책이다. 1학년 단계에서 대학 소속감을 키우고 학습역량 진단과 진로탐색을 한 후 전공진입, 전공 기초와 심화학습, 다양한 비교과 프로그램과 동아리 활동, 글로벌 체험, 졸업 후 진로에 이르는 '학생 성공(student success) 로드맵'을 만드는 교육혁신 프로젝트다. 이렇게 볼 때 전공선택제는 무전공으로 입학하는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재학생을 대상으로 맞춤형 학습 시대를 여는 것이다. 이는 대학이 사는 길이기도 하다.

1학년 경험을 전면 재구성해야 한다. 1학년 1학기에 무엇을 경험하느냐가 대학에서 성공을 좌우한다. 이 시기에는 자기 적성, 흥미, 강점을 찾는 '자기이해'(self-awareness)부터 졸업 후 펼칠 꿈과 진로를 탐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입경쟁 때문에 놓친 공감, 배려, 협동역량을 기르는 것도 필요하다. 대학생활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인생 3모작의 평생학습 시대에 대비하는 길이다.



전공 진입 후도 중요하다. 이 제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언가. 무전공으로 입학한 후 전공을 선택할 수 있게 하면 성공인가. 아니면 전학년에 걸쳐 학습의 지평을 넓히는 맞춤형 교육 시대를 여는 것인가. 한 번 전공을 선택하면 끝인가. 아니면 전공을 기초로 원하는 공부를 맘껏 할 수 있는 개방형 학습 생태계를 만드는 게 목표인가. 직업세계가 요구하는 전공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전공에 매몰돼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학습 선택권 보장은 시대적 요청이다. 맞춤형 교육을 통한 학생의 성공은 대학의 책무다. 그러나 교육철학자 존 듀이가 말했듯이 자율이 방임은 아니다.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돈희 서울대 명예교수도 그의 저서 '교육정의론'에서 학생의 흥미와 학습역량을 고려한 교육기회의 제공이 중요하다고 했다. 성공적인 전공선택을 위해서는 전문적인 상담과 지도가 필요하다. 선진국 대학들이 학사지도교수를 늘리고 학업계획 작성과 교수상담을 필수로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전공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제도는 1973년 실험대학에서 비롯됐다. 그후 50년 동안 학과제와 학부제를 반복했다. 학부제 개혁은 정부가 주도했고 대학 차원의 치밀한 준비 없이 시행되다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성패는 대학사회에 달렸다. 학생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다. 성장의 주체다. 잊고 있었던 학생 성공 관점에서 맞춤형 학습설계와 대학경험을 지원해야 한다. 획일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대학, 학생, 지역 특성으로 고려해야 하고 '학과 쏠림'과 기초학문 위축도 대비해야 한다. 또다시 용두사미가 되면 대학의 미래는 없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교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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