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요하니스베르크성은 8세기경 샤를마뉴대제 시절 그 지역 수도원의 와이너리로 출발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저런 곡절을 겪었다. 나폴레옹전쟁이 끝나고 1815년에 비엔나회의가 열렸을 때 이 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의제의 하나였다고 한다. 당시 이미 최고의 명품 산지로 전 유럽에 알려져 있어서 힘 있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차지하려고 나섰기 때문에 결론이 나지 않았다.
1942년 영국군이 마인츠를 폭격할 때 성도 훼손되어서 거의 다시 지었다. 1964년에 보수가 완료되었다. 당시 소유자는 메테르니히 재상의 후손인데 이름이 좀 길다. 파울 알폰스 마리아 클레멘스 로타 필리푸스 네리 펠릭스 니코메데스 프린츠 폰 메테르니히 빈네부르크(Paul Alfons Maria Clemens Lothar Philippus Neri Felix Nicomedes Prinz von Metternich-Winneburg, 1917~1992). 그냥 '폰 메테르니히 후작(Furst)'이라고 불렸다. 독일어 퓌르스트(Furst)는 신성로마제국과 독일제국, 오스트리아제국에서 사용되었던 칭호로 공작보다는 낮고 백작보다는 높은 작위다. 후작은 자동차 경주분야에서 일했고 본인도 카레이서였다. 후작 부인이 2006년까지 계속 그 성에서 살다가 타계했다. 부부는 자손이 없어서 요하니스베르크의 메테르니히 가문 명맥은 거기에서 끝나게 된다.
요하니스베르크에서는 리슬링만 재배된다. 리슬링은 독일 대표 최고급 포도품종이다. 라인강 유역, 모젤지방, 프랑스 알자스에서 생산된다. 성의 셀러에 보관된 가장 오래된 와인은 1748년산이다. 셀러 한쪽 '와인도서관'의 맨 안쪽에 철창이 설치된 룸이 하나 있고 좌측 맨 위층에 있는 검은색 병이다. 와인의 상태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한다. 밖에서는 온갖 일들이 일어났고 뭇사람들이 왔다가 갔지만 그 병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이제 266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