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천재 창업가는 위기에 빠졌을까

머니투데이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4.10.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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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사진=유효상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사진=유효상


두 살 때 주기율표를 외우고 열 살 때는 소프트웨어 컨설팅을 했으며, 열세 살이 되던 해에는 스프링클러 물 재활용 시스템 특허를 등록한 천재 소년이 있었다. 고등학생이던 열일곱 살에 루미나 테크놀로지(Luminar Technology)를 설립한 오스틴 러셀이다. 부모님 집 차고에 회사를 차린 러셀은 자체 제작한 컴퓨터로 광학 기술과 하드웨어 시스템을 연구했다. 닌텐도 게임기를 개조해 휴대전화를 만들기도 했고, 홀로그램 키보드 시스템, 악성 종양 레이저 탐지기 같은 것들을 개발하기도 했다.

회사를 설립한 다음 해인 2013년, 스탠퍼드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했지만 회사에 전념하기 위해 3개월 만에 학교를 그만뒀다. 이후 자율주행 자동차의 고성능 센서인 라이다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러셀의 목표는 기존 장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성능 라이더를 만드는 것이었다. 5년 동안의 피나는 노력으로 해상도가 높고, 범위가 넓어 안정성이 뛰어난 제품을 완성했다. 혁신 제품이 탄생하자 투자금이 몰리며 루미나는 유니콘 기업에 등극했다. 알파벳의 웨이모나 GM의 크루즈와 같은 자율주행차 대기업으로부터 엄청난 거액으로 매각 제안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했다.



자율주행차의 핵심기술은 사물을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때문에 자동차 제조사들은 완성도 높은 자율주행을 구현하기 위해 카메라, 레이더(RADAR), 라이다(LiDAR) 등의 센서를 적극 활용한다. 운전자가 손을 놓아도 알아서 달리고, 멈출 때도 스스로 멈추고, 원하는 대로 차선도 바꾸는 자율주행차는 한 대당 300~400개가 넘는 센서가 장착된다. 그중 가장 핵심이 되는 센서는 바로 인간의 눈에 해당하는 라이다와 레이더이다. 여기에 카메라까지 더해지면 자동차는 더욱 똑똑한 눈을 갖게 된다.

라이다(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는 레이저를 목표물에 비춰 사물과의 거리 및 다양한 물성을 감지하는 기술로, 자율주행차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한다. 라이다는 주행하는 동안 360도로 돌며 거리를 비롯해 폭과 높낮이까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주위 사물을 3차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라이다는 크기가 커서 미관상 좋지 않고, 짧은 거리에서만 사물 인식이 가능해 자율주행차에 활용하기 어려웠으며, 무엇보다 가격이 비싼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루미나는 이러한 단점을 보안하기 위해 라이다에 사용되는 레이저를 40배 강하게 만들어 사물 인식 가능 거리를 250m까지 대폭 늘렸고, 사이즈를 대폭 줄였으며 대량생산을 통해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모든 자율주행차 개발 회사의 러브콜을 받은 루미나는 2017년 도요타의 자율주행 렉서스를 필두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벤츠, 볼보, 아우디 등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 15개 중 12개를 포함하여 50개 이상의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자사의 라이더를 적용하기로 하면서 회사의 가치는 수직 상승했다. 드디어 2020년 12월, 회사를 나스닥에 상장시킨 그는 스물다섯 살의 나이로 억만장자가 되었다. 3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한 러셀의 지분가치는 한때 7조 원에 달하기도 했다.

웨이모 등 대부분 자율주행차에는 라이다 센서를 탑재하고 있으며, 현대차, 벤츠. BMW, 볼보, 제너럴모터스 등 테슬라를 제외한 모든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라이다를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 자율주행차는 오직 카메라 센서만을 고수했다. 차량 외부에 8개의 카메라를 설치해 정보를 수집하고 AI로 분석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비싼 라이다나 레이더 대신 저렴한 카메라를 여러 대 사용하면 원가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22년 12월 고해상도 레이더 센서를 추가하기로 생각을 바꿨다. 어두운 환경이나 비가 쏟아지는 악천후 상황에서는 카메라가 주변 물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격이 다소 비싸도 안정성을 위해서는 라이다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러셀과는 달리 일론 머스크는 "라이다에 의존하는 기업은 몰락하게 될 것이며, 설사 라이다를 공짜로 준다고 해도 쓰지 않겠다."라고 할 정도로 루미나는 테슬라와 대척점에 있다.

그런데 IT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루미나의 금년 1분기 매출의 10% 이상을 테슬라가 차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테슬라가 루미나의 가장 큰 고객인 것이다. 사실 테슬라는 2021년부터 루미나와 파트너십을 맺었으며, 그간 일부 테스트 차량에 라이다를 사용하기도 했다. 지난주 공개된 테슬라의 자율주행 택시 '로보택시'에 라이다 기술이 적용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었으나, 일론 머스크는 상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라이다가 자율주행 자동차의 승자가 되는 분위기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루미나가 있다. 이렇게 미래가 장미 빛일 것만 같은 루미나가 위기에 빠졌다. 그것도 굉장히 심각한 위기에 빠진 것이다. 2021년 초 38달러에 육박하던 주가가 끊임없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2024년 10월 14일 현재 1달러에도 못 미치는 87센트를 기록하며 상장폐지의 위기에 몰린 것이다. 주가가 3년 반 동안 무려 97% 폭락했으며, 20조 원이 넘던 시가총액은 겨우 5000억 원대로 주저앉았다. 루미나는 금년 초부터 인력을 30% 감축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으며, 생존을 고민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전문가들은 승승장구하던 루미나가 갑자기 위기를 겪고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첫째, 다수의 기업들이 라이다 기술 개발에 뛰어들면서 가격 경쟁이 심화되고, 루미나의 기술 우위를 위협하고 있다. 둘째,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루미나의 차별성이 약화되었다. 셋째,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위한 규제 및 안전 문제 해결에 시간이 소요되면서 라이더 시장이 예상보다 더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넷째, 전기차 캐즘, 글로벌 경기 침체로 자동차 산업이 위축되면서 자율주행차에 대한 투자도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다섯째, 라이다는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제품으로 상대적으로 생산 비용이 높지만, 가격 인하 압력이 커지면서 수익성 확보가 어렵다.

결론적으로, 루미나의 위기는 시장의 경쟁 심화, 자율주행차 시장의 성장 둔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요약된다. 자율주행차에 대한 지나친 환상이, 루미나를 '거품 낀 테마주'로 만들었다는 시각도 있다. 시가총액이 20조 원을 넘었지만 매출은 거의 없고 수천억 원의 적자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커다란 문제는 이렇게 회사는 실적을 내지 못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초격차 기술 개발과 경영정상화를 신경 써야 할 최고경영자가 1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서 래거시 매체를 인수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러셀은 작년에 미국 경제지 포브스를 8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주식매매 계약까지 체결하였으나,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서 최종 불발됐다. 테크기업의 20대 젊은 CEO가 갑자기 100년이 넘은 미디어 회사를 사겠다고 한 것이다. 이는 작년에 미디어 업계의 가장 큰 해프닝으로 평가됐다.

현재 루미나의 재무 건전성은 극히 좋지 않다. 골드만삭스 등 대부분의 투자은행들의 향후 전망도 대체로 부정적이다. 제2의 일론 머스크로 불리며, 혁신을 주도해 온 20대 천재 창업가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러셀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지금의 역경을 딛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비상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향후 100년 동안 1억 명의 생명을 살리고 100조 시간을 절감시킬 것(Saving 100 million lives and 100 trillion hours)'이라는 러셀의 비전이 실현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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