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네 팀장님, 그런데 베트남에서는요"

머니투데이 김홍주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2024.10.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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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주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 /사진제공=법무법인 세종 김홍주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 /사진제공=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님, 현장에서 사고가 났는데요. 베트남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있나요?"

"베트남 고객사가 이유없이 계약을 취소했는데 여기서도 공정위원회에 신고할 수 있을까요?"

베트남으로 건너와 현지 변호사들과 업무를 시작한 것이 3년 전 초여름이다. 매캐한 공기, 노상 습하고 무거운 날씨, 기대를 접으면 한번씩 얼굴을 비추는 쨍한 햇볕, 그리고 무더위. 짧게 잡아도 삼성전자 박닌 공장 설립 이후 20년이 넘는 유구한(?) 주재(駐在)의 역사가 교민사회까지 팽창시키면서 이곳 하노이는 남부 호치민과 함께 한국 기업의 출장 코스에 빠지지 않는 주요 해외 거점이 된 지 꽤 됐다.



한국인, 특히 나 같은 한국 변호사 입장에서 베트남법은 접근하기 편리하다. 대부분 법이 영어로 번역돼 있고 법률시장도 개방돼 있다. 법인 설립, 투자 인센티브 획득 등 기본적인 투자자문부터 부동산 프로젝트를 위한 타당성 조사와 실사보고, 베트남 기업의 인수·합병 자문,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딜 소싱 작업까지 다수의 한국계 로펌이 베트남에 진출해 한국 기업에 다양한 법률자문을 제공하고 있는 배경이다. 글머리의 질의는 해외투자 진출 이후의 운영자문에 속한다.

누군가 베트남법에 대해 물으면 "있어야 할 것은 다 있습니다. 다만…"이라고 대답한다. 필요에 따라 법이 부지런히 제·개정되고 있지만 법률적 해석의 원칙이 일반화되지 않아 법의 공백이나 법령간 모순을 해결하는 방식이 제각각임을 부연해야 하는 것이다. 베트남 법원이 판결에 공식적인 기속력을 부여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싶다. 베트남 공무원들은 법에서 '된다'고 명시한 사항이 아니면 '안 된다'고 단정하기 일쑤다. 한국계 진출기업을 대상으로 법률지원을 하다 보니 이런 간극을 메우는 것이 나의 중요한 역할이 됐다.



첫번째는 투자자인 우리 한국 고객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렇지만 베트남법에 따르면 저렇습니다'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베트남법의 특이점과 그 배경, 우회 가능성과 향후 전망까지 투자자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야 한다. '되는 것'은 짧은 근거 하나로 충분하지만 '안 되는 것'은 명분까지 필요하다. 인간은 미지의 것에 공포를 느끼기 때문에 내가 이곳에서 할 일은 베트남의 제도·체계·법령 등에 관한 공포를 이해의 범주 안으로 자연스럽게 이끄는 것이다. "본사에서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라는 주재원들의 요청이 오히려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다.

두번째는 베트남 정부나 계약 상대방인 베트남 측을 설득해 베트남법상의 공백이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다. 즉 한국에서 통용되는 상식과 관행을 법률의 이름을 빌어 베트남 현지에 관철시키는 작업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법률은 인간이 가진 도덕과 상식의 축소판이고 사회의 경제·문화·기술을 수렴하는 집합점이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우리 법률가들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꽤 뿌듯한 지점이다. 현지 투자기업과 교민에 대한 한국 대사관이나 상공인연합회(KOCHAM) 등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네, 팀장님. 근데 베트남에서는요." 베트남과 한국의 공생관계, 그 안에서 분투하는 오늘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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