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그의 묘사처럼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최우선에 두지 않는다. 그보다는 편안한 것을 더 좋아한다. 합리와 이성은 어쩌면 '편안'이라는 상태에 도달하려는 과정일 때 가치가 있다.
개혁이 실패하는 경우는 그 개혁이 합리적이지 않아서라기보다는 개혁 과정에서 불편과 불안이 강조되기 때문일 때가 많다. 개혁은 생활 기준을 변경해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낯선 상황에 마주해야 하는 불확실성은 불안의 다른 말이다. 개혁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인데, 피해를 보는 이들이 저항하면 불편은 커진다. 따라서 개혁을 저지시킬 가장 좋은 방법은 대중이 불안을 느끼게 하고 일반에 불편을 주는 것이다. 개혁이 얼마나 합리적인지는 금세 잊힌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재정개혁의 일환이었지만 민심은 흉흉했다. 특히나 저소득층일수록 정부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긴축에 더 큰 불편을 느낀다. 일반적으로 선거에서 야당이 정권심판론을 들고 나오면 여당은 정책기대감을 심어주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그래서 선거를 앞두고 정부지출을 늘리는 게 정석이다. 헬리콥터로 현금을 뿌리기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올해 총선에 '실탄없이' 임해야 했다. 재정개혁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당장의 편안함을 해쳤다.
의료개혁은 말할 것도 없다. 의대 정원을 늘리자 의사들은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맞섰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의사 기피, 무의촌 확산 등 국민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개혁이었지만 의사들은 더 큰 불편과 불안을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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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이 누적될수록 개혁의 저항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역대 정부에서 재정과 의료 부문의 모순을 조장하고 방치한 사이 개혁의 필요성은 더 커졌고, 더 큰 불편과 불안이 불가피해졌다. 개혁은 높은 국정지지도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하지만 반대로 개혁 때문에 인기가 떨어지는 사례가 흔하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그렇다면 개혁을 포기할 것인가. 자연인은 당장의 편안함을 중시할지 몰라도 국가가 추구할 것은 합리성이다. 개혁은 불편이 따르지만 국가가 지속가능하려면 필수불가결하다. 개혁이 좌초된다면 앞으로 어느 누구도 함부로 미래세대를 위해 나설 용기를 내지 못할 것이다. 연금개혁과 세제개혁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했다. 국민의 불안을 아우르는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불편을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있는지, 그걸 조장하는 이는 없는지 분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