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EU의 인공지능법도 브뤼셀 효과(Brussels Effect)를 낼 수 있을까. 브뤼셀 효과란 EU의 규제가 회원국에 적용되는 것을 넘어 다른 나라도 이를 따라가는 현상을 말한다. 브뤼셀은 EU 본부가 있는 도시고 여기에서 EU의 법안이 만들어진다.
EU 인공지능법이 제정된 이후 글로벌 기업이나 다른 국가의 상황은 어떨까. EU 인공지능법 준수부담으로 애플은 아이폰에 탑재될 애플 인텔리전스 기능을 유럽에 출시하지 않기로 했고 메타 역시 오픈소스 LLM인 라마3을 유럽에 배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영국은 지난 3월 혁신친화적인 AI 규제(A pro-innovation approach to AI regulation) 백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영국은 혁신을 저해하는 법규제를 도입하지 않고 분야별로 AI 규제에 적용 가능한 접근방식을 취할 것이며 새로운 단일 규제기관을 만들지 않고 기존 관련기관들에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런 영국의 전략은 EU의 전략과 대비된다. EU가 모든 분야에서 AI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단일한 규제 프레임워크하에 중앙정부가 규제하는 수평적 접근법을 취한 데 반해 영국은 맥락에 따른 AI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분야별 개입을 하면서 개별 기관이 규제하는 분야별(domain-specific) 접근법을 취했다. 다만 영국 신정부는 챗GPT와 같은 첨단 AI 모델인 프런티어 모델엔 강제규정을 포함한 법안을 제정하되 비프런티어 모델엔 여전히 분야별 규제방식을 취하기로 했다. 사실상 글로벌 빅테크에만 법규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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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아직 주요 선진국 어느 곳도 AI에 대해 EU와 같은 포괄적, 수평적, 중앙집권적 법규제를 도입하지 않았고 당분간 도입할 계획도 없다. 이런 점에서 EU 인공지능법의 브뤼셀 효과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만약 한국이 상당수 규제가 포함된 AI 기본법을 제정한다면 브뤼셀 효과를 입증하는 최초 AI 선진국이 될 것이다. 주요 국가들이 EU 인공지능법을 따르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핵 보유 여부와 유사하게 AI기술과 산업진흥이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