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코스모스와 카오스 미로찾기

머니투데이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2024.10.17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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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교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구민교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


나이가 들수록 생기는 단점 중 하나가 살아온 과거의 어떤 픽셀들은 점차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편안했던 적은 없지만 요즘 들여다보는 우리 정치는 이랬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한마디로 점입가경이다. 무수한 국가적 난제 앞에서 여야는 물론 집권당과 대통령실이 서로를 탓하기 바쁘다. 남 탓하는 것은 자신의 무지를 덮기 위함이라고 했던가. 그러다 보니 부쩍 경직된 사고와 과도한 권위에의 의존이 두드러진다. 대통령 말씀이니, 영부인 말씀이니, 당대표 말씀이니 하는 것들에 호가호위하는 이들이 판을 친다.

우리 정치는 미로에 빠졌다. 코스모스(cosmos)와 카오스(chaos)와 사이 어딘가에서 허우적거린다. 코스모스는 우주와 자연세계가 법칙과 조화를 이루며 조직된 상태를 말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이 개념을 통해 세상을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질서로 설명하려 했고 그의 관념론은 몇 세대 뒤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에, 더 나중에는 기독교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연히 정치세계가 코스모스일 리는 없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코스모스 세계에선 여러 정통종교에서 보듯이 상충하는 관점의 자유로운 대결이 허락되지 않는다.



내일 또 누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정치판의 엔트로피를 높여 놓을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작금의 정치 상황이 카오스의 깽판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선 카오스가 우주가 형성되기 이전의 원초적 혼돈과 무질서한 상태를 의미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강조했듯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권위의 무게가 아니라 (한국 정치에선 사라져버린) 논지의 타당성과 합리성이 중요하다. 다소 혼란스럽고 질서정연해 보이지 않더라도 다양한 의견과 이념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이 1990년 보이저 1호가 60억㎞ 너머에서 찍은 지구 사진에서 영감을 얻어 출판한 '창백한 푸른 점'에 이런 구절들이 나온다. 광활한 우주를 떠다니는 보잘것없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지구 위에서 무수한 권력자가 그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 차지하는 영광을 누리기 위해 죽인 사람들이 흘린 피의 강물을 생각해보라. 이 작은 픽셀(지구)의 한쪽 귀퉁이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이들에게 저지른 수많은 만행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망상 말이다.



조화와 질서를 상징하는 이름처럼 꽃잎이 균형 있게 펼쳐진 모습으로 사랑받는 코스모스의 계절이다. 잠시 이 혼돈에서 벗어나 들녘 코스모스의 감성을 느끼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구해 읽어봐야겠다. 그런데 그의 채식주의자도 카오스 세계에서 코스모스를 꿈꿨던 것은 아닐까.(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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