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분열과 융합

머니투데이 혜원 구리 신행선원장 2024.10.14 02:03
글자크기
혜원 구리 신행선원장혜원 구리 신행선원장


원자 단위에서 에너지가 발생하게 되는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핵의 분열과 융합이 그것이다. 질량의 변화로 인한 에너지의 발생 원리다. 그 원리로 인해 우주에 별이 만들어지게 된다. 한때 대한민국을 홍보하는 콘셉트가 다이내믹 코리아였다. 우리나라는 살아서 역동한다는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를 보면 마치 정지된 듯 정체돼 있는 나라가 있는 반면 하루하루가 활기찬 역동적인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의 역동성은 빨리빨리 문화로 상징되곤 한다. 그러나 지난 100여년간의 우리 역사를 들여다보면 어디서부터 이런 역동성이 나왔을지 의문스럽다.

35년간의 일제강점기를 겪고 미 군정을 지나 3년여의 민족상잔 전쟁, 4·19혁명, 5·16군사쿠데타, 10·26사태, 5·18민주화운동, 6·10항쟁, 그리고 IMF, 대통령의 탄핵과 복권, 그의 자살, 또 다른 대통령의 탄핵, 그리고 수감, 검사 출신 대통령의 탄생. 그간의 사정을 상징하는 이런 일들의 기저에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연이 넘쳐날지는 당연지사다. 이렇게 많은 일을 겪는다면 소진돼 나가 떨어져버릴 것 같은데 한민족은 미스터리한 그 무엇이 있다.



우리 정치는 분명 과열돼 있다. 그것의 바탕에는 한국인 특유의 정(情)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정을 느끼고 개인적 친분이 없어도 뜨겁게 지지한다. 혹 반대편에서 비판이라도 한다면 마치 자신의 가족이 욕을 들은 듯 분개하기도 한다. 설사 그가 잘못했더라도 가족의 일인 양 덮어주려 한다. 오래전 일인데 한 도반 스님을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그 스님이 싱글벙글 웃고 있길래 왜 그리 자꾸만 웃느냐고 물으니 그 스님이 하는 말이 "우리 누님이 대통령 됐다 아이가!" 하며 행복해 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참 별스럽다고 느꼈다. 오랜 롯데자이언츠 팬이 어느 해 팀이 수십 년 만에 우승하는 모습을 본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그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도 그 도반은 서울까지 오가며 반대시위를 하며 "이 나쁜 놈들이 죄 없는 우리 누님을 탄핵했다"며 분개한 모습을 보였다. 좌·우파를 떠나 의외로 이런 모습은 우리 주변에 많다. 이 좁은 땅에서 동과 서로, 남과 북으로 나뉘어 옳다 그르다 하고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내 편이 이기기만 하면 그만인 듯 보이기도 한다.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만 해도 한쪽에선 빨갱이라며 비판하고 다른 편에선 역사에 대한 통찰과 공감에 찬사를 보낸다. 이런 기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좀 살펴보는 계기가 되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왜 우리는 이렇게 분열돼 있는가. 이런 분열이 한편으로는 우리의 역동성에 힘을 보태기도 하지만 그것이 임계치를 넘으면 폭탄이 될 수도 있다. 예전에는 통합과 화합을 기치로 내세우는 정치인들도 있었지만 요즘은 세월따라 확정편향이 점점 뚜렷해져만 가는 것 같아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분열돼 상대를 상대하려 하지 않고 있나. 미국에서는 대선후보를 향한 총기 테러도 있었고 우리도 야당 대표가 테러당한 사건이 있었다. 정치적 신념은 자유롭게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신념이 다르다고 죽여야 한다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다. 모두가 조화를 이루며 번영하기 위해 정치가 있는데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태도는 옳지 않은 것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분열돼 있는가. 세상은 항상 상대적으로 움직인다. 내가 상대를 미워하는 만큼 상대도 나를 미워할 뿐이다. 일부 종교인도 정치 이슈에 말려들면 자비고 나발이고 던져버리고 입에서 불을 뿜는다. 역시 본말이 전도된 일이 아니겠나. 좌우를 떠나 화합과 조화를 전해야 할 종교인이 그렇게 진지하게 정치인이 돼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근대에는 분열을 연료로 역동성을 만들어왔다면 앞으로는 화합과 융합으로 그 역동성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좌파든 우파든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에게 진심으로 쿨한 축하를 해줬으면 좋겠다. 선진국의 민주시민이면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이 매너와 미덕 아니겠나. 옳고 그름도 따져야겠지만 조화와 화합을 목적으로 두면 좋겠다. 우리는 정의 민족이 아닌가.( 혜원 구리 신행선원장)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