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전 9시29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앞에서 매장이 열리자마자 들어가려는 '오픈런'을 하는 시민들 모습. /사진=김호빈 기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인 지난 11일 오전 9시20분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 시민 수십명이 매장 안으로 달려갈 이른바 '오픈런'을 준비하고 있었다. 디지털 세대인 이른바 MZ(밀레니얼+Z 세대) 시민도 상당수였다.
경기도 광주에서 광화문까지 책을 사러 왔다는 이모씨(20)는 "수능에서도 한국사가 중요한 과목이 아니지 않냐"며 "'소년이 온다'만 읽어서 이번에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구매했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오전 10시 지하철 1호선 종각역 5~6번 출구 사이에 위치한 영풍문고 입구가 열리자 우르르 들어가는 사람들. /사진=오석진 기자
서점 직원 30대 A씨는 "노벨상이 발표되고 오늘 새벽부터 인터넷 예약이 밀려들었다"며 "서점 재고 때문에 예약을 급히 막았는데 방금 문을 연 지 8분만에 재고가 동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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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전 10시20분 영풍문고 한강 작가의 코너에 책이 다 떨어진 모습. /사진=오석진 기자
한강 작가가 국제적으로 주목받던 시기 학창 시절을 보낸 MZ 독자들은 "뿌듯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출판업계에서 종사하는 한모씨(23)는 "한강의 소설을 이해하지 못하던 2016년부터 이해하게 된 2024년까지 내가 점차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전 세계에서 모두가 한강의 소설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씨(25)도 "나 같은 90년대생은 한강의 글을 통해 1980년과 1947년의 경험과 감정을 느낀다"며 "10~20대 독서 기록에 그의 책들이 담겨있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박모씨(23)도 "노벨문학상을 받는 장면을 생중계로 봤다"며 "한강 작가 자서전도 읽을 생각"이라고 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1970년 11월 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다음해 단편소설 '붉은 닻'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2016년엔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았다.
‘2024년 노벨 문학상’ 영예는 우리나라 소설가 한강에게 돌아갔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지난 2000년 평화상을 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다.사진은 지난해 11월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작가.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11일 오전 10시 경기 고양시 '한영문화사' 인쇄 공장. 인쇄기가 쉴새 없이 가동되고 있다. /영상=김선아 기자
지난 11일 오전 10시 경기 고양시 '한영문화사' 인쇄 공장. 문틈으로 쉴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음이 새어 나왔다. 컬러 인쇄기 5대에 종이가 1장씩 빨려 들어가면서 굉음을 냈다. 종이를 말리는 알코올, 인쇄에 쓰는 잉크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곧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할 종이 더미가 공장 곳곳에 쌓였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인쇄소가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한영문화사는 한강 작가가 2021년 펼쳐낸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초판 1쇄부터 단독으로 찍어낸 곳이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강 작가가 수상 후 '가장 먼저 읽었으면 하는 작품'으로 꼽은 책이다. 그는 지난 10일 노벨위원회와 한 인터뷰에서 "최신 작품인 '작별하지 않는다'가 시작이 됐으면 한다"며 "모든 작가는 자신의 최신 작품을 가장 좋아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한국인 소설가 한강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한국 작가 가운데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강이 처음이다. 사진은 지난해 11월14일 열린 한강 작가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 모습. /사진=뉴스1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 모습. 이곳에서는 매년 12월 노벨상 연회가 열린다. 한강 작가도 이 곳의 노벨상 만찬에 참석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한강을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사진=뉴스1
첫 물량은 돌아오는 월요일인 오는 14일에 보내기로 했다. 물량을 맞추기 위해 공장이 보유한 인쇄기 5대를 모두 24시간 가동한다. 특수한 상황에 직원들도 주말을 반납했다. 책에 쓰는 종이는 430연, 모두 21만5000장을 주문했다. 하룻밤새 이 많은 종이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지난 11일 오전 10시30분이 돼도 종이가 도착하지 않자 직원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직원들은 가지고 있던 종이 더미의 포장지를 빠른 손놀림으로 벗겼다. 쌀쌀한 날씨에도 풀 가동된 공장 열기에 통풍이 잘 되는 반소매 티셔츠를 입었다.
사무실 직원들은 수화기를 들고 통화에 열중했다. 직원들은 거래처 직원에게 "사장님 저희 '작별하지 않는다' 먼저 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 용지는 내일 언제쯤 들어올 수 있어요? 오전 8~9시에는 들어왔으면 해요"라며 애를 태웠다.
같은날 오전 11시가 지나자 종이를 실은 4.5톤 트럭, 18톤 트럭이 연이어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직원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종이를 운반했다. 임원들까지 나서 지게차를 타고 종이를 날랐다.
◆바쁘지만…인쇄업계 그야말로 '감격'
지난 11일 오전 11시 경기 고양시 '한영문화사' 인쇄 공장. 기다리던 종이가 도착하자 마자 직원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종이를 운반했다. 상무도 나서서 지게차를 타고 종이를 나르는 모습. /영상=김선아 기자
이곳에서 만들어진 책이 향할 서점가에선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책 주문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대형 서점 온라인 사이트는 한때 마비됐다. 오프라인 서점은 책을 사려고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장사진이다. 시민들 수십명이 문이 열리자마자 매장 내로 달려가는 이른바 '오픈런'도 벌어졌다.
또 다른 직원은 "인쇄업계에서 일하며 출판업계 사람들이랑 가까이 지내니까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더욱 신기하게 느껴진다"며 "한국인으로 감격스럽고 뿌듯한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지난 11일 오전 10시 경기 고양시 '한영문화사' 인쇄 공장. 한강 작가가 2021년 펼쳐낸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초판 1쇄부터 단독으로 찍어낸 곳이다. /사진=김선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