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 더 이상 존재 않는다" SNS 달군 말…노벨상에 서운한 중국, 왜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2024.10.1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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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AI 대전환 맞춰 미래지향적 연구해야"…
물리·화학상 수상 67년간 전무, 서운한 기류도

"물리학 더 이상 존재 않는다" SNS 달군 말…노벨상에 서운한 중국, 왜


"물리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物理學不存在了")

과학기술 연구분야 최고 권위 노벨상을 AI(인공지능) 부문 연구자들이 휩쓴 데 대해 중국 과학계도 신선한 충격을 받는 듯하다. 기초과학 연구에 자부심이 높은 중국인들은 중국 유명 과학소설 '삼체'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며, 미래과학 연구로 무게중심을 옮겨가야 한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오래도록 과학기술 분야에서 노벨상과 인연을 맺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도 읽힌다.

"기존 과학 상식·연구방향 달라져야"
2024년 노벨상 수상자들이 순차적으로 발표된 가운데 11일 중국 현지언론들은 일제히 "노벨상 수상자들의 면면은 현장 연구자들의 기존 인식을 완전히 뒤집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지난 8일(현지시간)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를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 발표했다. AI 핵심인 머신러닝 연구 권위자들이다. 위원회는 9일엔 구글 AI시스템인 딥마인드 최고경영자 데미스 허사비스와 연구원 존 점퍼 박사, 그리고 단백질 설계 AI인 '로제타폴드' 개발자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를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수상자가 발표된 이후 중국 SNS(사회관계망서비스)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과학소설이자 드라마로도 제작된 '삼체'의 마지막 대사인 "물리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수없이 리트윗된다. 소설속에선 외계생명체의 등장으로 과학적 상식들이 송두리째 달라졌다는 의미로 쓰였는데, 이번 노벨상과 관련해선 순수과학 연구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으로 흘러갈 거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남중국공대 야오야오 교수는 현지언론에 "AI는 시대의 주류가 됐으며, 노벨상에서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AI는 점차 더 많은 분야에 침투해,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과학기술 교육 플랫폼 에이보우를 창업한 렁제는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도약의 서막을 열었다"며 "노벨상 수상 자격은 충분하다"고 했다.

중국 학계는 특히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인 힌턴 교수의 이력에 주목하며 과학기술 연구의 주류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진단한다. 힌턴 교수는 AI의 대부로 불리며 2018년엔 컴퓨터과학 분야 최고 권위의 튜링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물리학을 전공하거나 주력으로 연구한 경력은 전무하다. 기존 틀 안에서 '물리학자'라고 불리기 어려운 인물이 물리학 최주류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된 거다.

중국 베이징대(북경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한 현직 의사는 중국 현지언론에 "물리학의 하위 분야는 이미 작동을 멈췄으며,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중국 연구자들은 사실상 계속해서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과학원 공학박사 출신 한 연구인력은 또 "모두가 물리학이라고 이해하는 내용들은 너무나 전통적이며, AI는 이와는 다른 영역"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 강국 중국, 관련 노벨상 수상은 67년 전이 끝
 '2024 노벨 물리학상'은 미국 과학자 존 홉필드(91·사진에서 화면 왼쪽)와 영국계 캐나다인인 컴퓨터 과학자이자 인지심리학자 제프리 힌턴(76·오른쪽)에게 돌아갔다. 8일(현지시간) 스웨덴 왕립 카롤린스카연구소 노벨위원회가 두 사람의 '2024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발표하고 있다. 2024.10.08.  /AFPBBNews=뉴스1 '2024 노벨 물리학상'은 미국 과학자 존 홉필드(91·사진에서 화면 왼쪽)와 영국계 캐나다인인 컴퓨터 과학자이자 인지심리학자 제프리 힌턴(76·오른쪽)에게 돌아갔다. 8일(현지시간) 스웨덴 왕립 카롤린스카연구소 노벨위원회가 두 사람의 '2024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발표하고 있다. 2024.10.08. /AFPBBNews=뉴스1
AI 노벨상이 화제가 되는 배경엔 과학기술 강국이면서도 노벨상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는 중국의 상황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이 깔려있다. 최고의 두뇌들이 모두 의대로 향하는 한국과는 달리 중국은 주요 대학의 최고 엘리트들이 공학과 자연과학으로 몰린다. 급속한 경제성장 속에서도 기술중심 사조가 명확하다. 중국 정부는 이미 2022년부터 과학기술 논문의 양과 질에서 미국을 제쳤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중국의 마지막 과학기술 분야 노벨상 수상은 67년 전인 1957년 리쩌다오와 양첸닝의 물리학상 공동 수상이 마지막이다. 중국인이면서 199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치추이 박사는 수상 당시 국적이 미국이었다. 또 2008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오사무 시모무라 박사도 중국계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엄연히 일본인이다.



순수 중국 국적으론 2012년 붉은수수밭(원작소설명 홍까오량가족)의 작가 모옌이 노벨 문학상을, 2015년 투유유 교수가 말라리아 치료제인 아르테미시닌 발견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물리·화학 분야에선 번번히 중국을 퇴짜 놓은 노벨위원회는 2010년 민주화운동가 류샤오보에게 노벨 평화상을 안겼다. 수상 당시에도 중국 정부에 의해 감금된 상태였다. 중국 입장에선 위원회가 더 야속하다.

그런 만큼 중국 내에서는 노벨상 수상자 선정에 대한 아쉬움을 넘어서 서운한 기류가 역력히 읽힌다. 노벨상 자체가 서구중심적이고 선정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시안빈 칭화대(청화대) 교수는 2015년 투 교수 수상 당시 "노벨상이 서구의 '개인 천재' 철학을 중심으로 선정되는 건 큰 문제"라며 "연구 팀워크를 더 중시하는 중국 학자들이 불리하다"고 비판했다.

또 왕이웨이 런민대(인민대) 교수도 지난 8월 인터뷰에서 "서구 국가들은 중국의 과학적 성과를 인정하지 않고, 중국의 발전 경로를 왜곡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중국의 현대화 모델이 서구의 자본주의 모델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이 이를 공정하게 평가하지 않고 있으며, 이는 노벨상이 서구 편향돼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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