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집 앞은 조용…'노벨상 발표' 고은 집 몰려가던 때와 딴판, 왜?

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2024.10.1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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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노벨 문학상 수상]

2012년 10월, 경기 안성의 고은 자택 앞에 대기 중인 취재진.2012년 10월, 경기 안성의 고은 자택 앞에 대기 중인 취재진.


10일 저녁 8시,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한강'이 발표되자 국내 문학계는 물론이고 언론도 '깜짝 소식'에 다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전혀 예상 밖이었다고 할 정도로 의외의 결과여서 언론도 대비를 하고 있지 못했다.

과거 매해 시인 고은의 자택 앞에 방송사 중계차량들이 몰려가던 때를 생각하면, 이번 수상 소식이 전해지는 방식은 다소 밋밋하다. 한강 본인도 국내 언론에 따로 수상 소감 인터뷰를 하지 않았을 정도다.



2002년 경부터 한국 문학가는 수상 후보군으로 거론됐었지만 대체로 시인 고은이 항상 가장 가능성 높은 후보로 꼽혔다. 대략 10여년을 매해 노벨 문학상 발표 시점엔 고은의 자택 앞에 방송사 중계차와 수십명의 취재진이 몰려가 대기했다.

도박사이트에 의존한 '깜깜이 정보'…고은 집 앞 매년 10월 둘째주 목요일마다 대기하던 취재진
취재진이 고은의 경기도 안성 자택 앞에 처음으로 몰려든 건 2005년 10월 13일이었다. 10월 둘째 주 목요일에 발표되는 노벨 문학상 관례에 따라 그날 100여명의 취재진과 동네 주민들이 자택 앞에 모여 있었다. 당시 영국 도박사이트가 고은의 수상가능성을 높게 봤고 일부 외신에서도 거론된 게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고은 수상 실패는 이후 매년 10월에 겪는 연례 행사처럼 여겨졌다.



여기엔 노벨상에 대한 국내의 무지도 영향을 미쳤다. 노벨상 추천은 각 분야에서 수백건 혹은 경우에 따라 수천건이 접수된다고 알려져 있다. 마감날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스웨덴 한림원이 후보군을 모으기 위한 정보 수집에 가까운 연례 절차일 뿐이다.

2011년 10월 경기 안성의 고은 자택 앞에서 대기 중인 방송사 중계차와 취재진.2011년 10월 경기 안성의 고은 자택 앞에서 대기 중인 방송사 중계차와 취재진.
노벨상은 철저하게 비공개 과정을 통해 정해지기 때문에 후보군조차 알 수 없다. 외국 도박사이트가 유력한 보도 근거로 인용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도박'대상으로 활용돼 베팅이 가능할 정도로 노벨상 수상은 미리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고은이 처음 유력 후보로 꼽혔던 2005년, 10월에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이 한국이었다. 그러다보니 주빈국 한국의 문학가들이 유럽에 많이 소개되는 기회를 얻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고은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던 것이었다. 당시 한국 문학계 혹은 정부도 고은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였던것도 한 몫 했다. 고은은 전폭적 지원 속에 유럽 곳곳에서 시 낭송회나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수상 실패에 취재진이 자택 앞에서 철수하는 모습은 2005년부터 매해 10월 둘째주 목요일 밤 공중파 뉴스를 통해 대략 10여년간 전 국민에게 다소 허무한 분위기 속에 전파됐다. 그때마다 국내 문학계는 물론이고 국민들 다수는 "노벨 문학상은 아직 멀었다"는 막연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2010년 10월 경기 안성 고은 시인의 자택이 있는 동네에 걸린 현수막.2010년 10월 경기 안성 고은 시인의 자택이 있는 동네에 걸린 현수막.
수원시가 2013년 고은에게 작업에만 몰두하라며 광교산 자락의 한 주택을 리모델링해 제공해 수원으로 이사한 뒤에도 매년 10월의 소동은 이어졌다. 한두 해 더 이어지던 '고은의 좌절' 생중계는 어느새 끝났다. 10여년 원치않는 좌절을 겪던 고은은 민망함과 곤혹스러움을 피하기 위해 매해 10월은 해외 체류를 택하기도 했다.

이후 고은 자택 앞 취재진 대기 관례가 사라졌다. 2018년 2월 터진 고은의 '미투'사건도 영향을 미쳤다. 가장 유력해 보였던 고은의 권위와 명성엔 금이 갔다고 볼 수 밖에 없었고, 이후 코로나 시기도 거치며 노벨 문학상은 이젠 한국과 당분간 최소 10년은 인연이 없을 거라는 막연한 포기상태가 국내 문학계를 지배했다.



韓 문학 침체기 속 '단비'…"'한강' 책에 뻗은 손 다른 작가에게도 가길"
한국 문학의 침체도 영향을 줬다. 이번에 예상 밖의 쾌거로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외엔 눈에 띄는 작가가 많지 않았다. 한강의 작품도 국내외에서 이어졌던 수상실적에 비해선 많이 읽히지 않았다. 가장 많이 팔린 '채식주의자' 등의 작품도 수만권 정도에 그친다. 영국 부커상과 프랑스 메디치상 등 거의 매해 수상 기록을 더했지만 판매량은 해외 수상 소식이가 전해질 때만 슬쩍 평소보다 몇배 늘었다가 금방 식는 분위기였다.

(서울=뉴스1) =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한국인 소설가 한강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한국 작가 가운데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강이 처음이다.  사진은 작년 11월14일 열린 한강 작가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 (뉴스1DB)2024.10.1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서울=뉴스1) =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한국인 소설가 한강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한국 작가 가운데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강이 처음이다. 사진은 작년 11월14일 열린 한강 작가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 (뉴스1DB)2024.10.1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출판계의 한 관계자는 "고은 시인이 실제로 지난 20여년간 유력했는지도 알 수 없고, '민족 시인'이란 수사가 붙은 그의 시는 국내에서도 한 편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어서 과대평가됐다는 비판도 있었고 호불호가 갈렸다"며 "당장 그의 시를 암송하거나 제목이라도 제대로 아는 이도 많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어 "고은의 시는 장르적 한계로 해외에서 읽고 공감하기엔 보편성이 부족하단 평도 꾸준했다. 같은 5·18을 다뤘어도 고은의 시는 해외에선 공감을 얻지 못했고 한강의 소설은 보편성을 인정받았을 수 도 있다"며 "한강의 소설 작품이 해외에서 계속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기대가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받게 되리라 점친 출판인은 많지 않았고 한 10년 뒤에나 받으면 좋겠다는 정도였다. 문학 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놓고 보면 충분히 받을만하단 평가가 나올 작품들이 있어서 많은 독자들이 지금이라도 많이 읽고 다른 작가들 작품으로 손을 더 내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웨덴 한림원 "많은 장르 아우르는 복잡성과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어구…뛰어난 주제와 특색 있는 변조 돋보여"
2024년 10월 10일 노벨 문학상 홈페이지.2024년 10월 10일 노벨 문학상 홈페이지.
한강 집 앞은 조용…'노벨상 발표' 고은 집 몰려가던 때와 딴판, 왜?
한강은 등단 이후 30여년간 인간의 폭력성과 본능 등 내면을 깊이 있게 조망하는 주제 의식과 감정을 울리는 표현력으로 한국 문학을 새로 이끌 주자로 거론됐다. 국내외 독자 모두에게 통할 수 있는 보편적 내용을 그만의 표현력으로 풀어낸 점이 한국 작가 최초로 영국 부커상과 프랑스 메디치상에 이어 노벨상까지 수상하게 된 이유라고 분석된다.

한강은 올해 호암재단의 '2024 삼성호암상'에서 예술상 부문 수상자로 결정되기도 했다. 한강은 호암상 수상 소감으로 "올해는 제가 첫 소설 발표한지 삼십 년이 된 해"라며 "그동안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 때로 신비하게 느껴진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더 먼길을 우회해 계속 걸어가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젊은 평론가들 사이에선 한강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었다. 따라서 이번 수상은 '의외의 쾌거'로 여겨진다. K-팝과 K-드라마 등으로 이미 전세계적 선호가 높아져 있는 K-콘텐츠 수준이 절정에 이르렀고 세계 주류에 편입됐다는 인정을 받은 것이라는 평가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31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4 삼성호암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기념촬영 하고 있다. 왼쪽부터 과학상 화학·생명과학부문 혜란 다윈 뉴욕대 교수, 과학상 물리·수학부문 킴벌리 브릭먼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연구원(고 남세우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연구원 대리 수상.배우자), 공학상 이수인 워싱턴대 교수, 의학상 피터 박 하버드의대 교수, 예술상 소설가 한강, 사회봉사상 제라딘 라이언 아일랜드 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 수녀. (사진=호암재단 제공) 2024.06.01. photo@newsis. /사진=최동준[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31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4 삼성호암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기념촬영 하고 있다. 왼쪽부터 과학상 화학·생명과학부문 혜란 다윈 뉴욕대 교수, 과학상 물리·수학부문 킴벌리 브릭먼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연구원(고 남세우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연구원 대리 수상.배우자), 공학상 이수인 워싱턴대 교수, 의학상 피터 박 하버드의대 교수, 예술상 소설가 한강, 사회봉사상 제라딘 라이언 아일랜드 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 수녀. (사진=호암재단 제공) 2024.06.01. photo@newsis. /사진=최동준
스웨덴 한림원 관계자는 수상 발표 후 인터뷰에서 "한강은 많은 장르를 아우르는 복잡성과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어구를 구사하는 작가"라며 "(작품에서) 뛰어난 주제를 연속성 있게 이어가면서도 특색 있는 변조가 돋보인다"고 평했다.

"한강의 작품 중 어떤 것을 가장 먼저 추천하겠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2014년 출간한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영문 제목: Human Acts)를 꼽았다. 한강은 한 인터뷰에서 "압도적 고통으로 써내려간 작품"이라고 창작 과정을 회고한 바 있다.



한림원 관계자는 "1980년대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한 감동적이면서도 끔찍한 이야기"라며 "트라우마가 어떻게 세대를 넘어 계승되는지를 다룬, 역사적 사실을 아주 특별하게 다룬 작품"이라고 평했다.

(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10일 오후 대구의 한 시민이 태블릿PC로 교보문고 앱을 통해 실시간 베스트셀러 순위를 살펴보고 있다.   교보문고 실시간 베스트셀러는 이날 오후 10시 기준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한강의 작품이 차지하고 있다. 2024.10.1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10일 오후 대구의 한 시민이 태블릿PC로 교보문고 앱을 통해 실시간 베스트셀러 순위를 살펴보고 있다. 교보문고 실시간 베스트셀러는 이날 오후 10시 기준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한강의 작품이 차지하고 있다. 2024.10.1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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