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진 400조 퇴직연금 갈아타기…업계 1위도 "올해 어렵다"

머니투데이 김남이 기자, 배규민 기자 2024.10.10 16:42
글자크기

삼성생명·부산은행·경남은행·광주은행 등 현물이전 시스템 마련에 시간 필요

퇴직연금 적립규모, 상위 금융회사/그래픽=윤선정퇴직연금 적립규모, 상위 금융회사/그래픽=윤선정


적립액 40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갈아타기(현물이전)가 시작부터 암초에 부딪혔다. 적립 규모 1위의 삼성생명과 지방은행, 일부 증권사가 시스템 미비로 올해 현물이전에 참여가 어렵다고 밝히면서 금융당국이 현물이전 시행 일정을 늦췄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생명과 하나증권, 부산은행, 경남은행, 광주은행 등이 일부 금융회사가 연내 퇴직연금 현물이전 참여가 어렵다는 의견을 금융당국에 전달했다. 오는 15일로 예정됐던 퇴직연금 현물이전은 이달 말쯤으로 우선 시행 시기가 밀린 상태다.



참여가 어렵다고 밝힌 금융회사는 금융당국과 함께 참여 일정을 조율 중이다. 광주은행이 올해 말로 우선 협의했고,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은 내년 4월 참여로 금융당국과 조율했다. 삼성생명과 하나증권은 내년 상반기로 일정이 잡힌 상태다.

퇴직연금 현물이전 참여가 어렵다고 밝힌 금융회사는 이전 시스템 미비를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삼성생명은 빨라야 내년 4월부터 퇴직연금 현물이전이 가능할 전망인데, 지난해 7월부터 퇴직연금 관련 운용시스템 개선을 위한 차세대 시스템을 구축 중으로 내년 3월 말에 완료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삼성생명 측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 중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물이전도 새로운 시스템에 맞춰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은행과 경남은행도 마찬가지다. 현재 차세대 퇴직연금 시스템을 개발 중으로 시스템 개발이 완료되는 시점에 현물이전에 참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부 중소형 금융회사는 외주업체에 맡긴 시스템 개발이 늦어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몇몇 금융회사가 현물이전 참여가 어렵다는 의견을 밝히면서 다른 금융회사에서도 일정을 늦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삼성생명은 퇴직연금 적립 규모가 올해 상반기 기준 48조4642억원으로 금융사 중 가장 많다.

금융권 관계자는 "적립액 규모 1위 사업자가 참여하지 않는 상황에서 퇴직연금 현물이전을 시행하는 게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소비자의 선택을 넓히기 위해 도입하는 제도인 만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형 은행들도 연기가 반가운 눈치다. 현물이전이 시행되면 증권업권과 갈아타기를 두고 경쟁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증권업권의 퇴직연금 수익률이 7.11%(2023년 기준)로 은행권(4.87%)을 앞서는 것도 부담이다. 은행권의 퇴직연금 적립 규모는 207조원으로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시스템 준비를 마친 은행들도 다른 금융회사의 시스템 미비 등을 이유로 일정을 늦출 것을 원하고 있다"며 "갈아타기를 안 할 수는 없지만 일정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으면 ETF(상장지수펀드) 라인업 강화 등에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밝혔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