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한 영업장의 영어 간판/사진=이혜수 기자
한글날 하루 전인 8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 미국인 플린씨(35)는 "한글로 가득찬 한국 거리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서울 연남동과 용리단길(지하철 숙대입구역~남영역~삼각지역~신용산역 일대) 일대를 돌아본 결과 영어 등 외국문자로만 표기된 가게 간판이 대다수였다. 한글 병기된 간판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8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한 영업장의 영어 간판/사진=이혜수 기자
외국인들마저 지나치게 많은 외국문자 간판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미국인 포어커씨(35)는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 입장에서 한글 간판, 차림표 등이 많다면 배우기에 용이하다. 한글로 된 것들이 많으면 연습도 더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8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식당의 한자 간판/사진=김호빈 기자
이어 "관광지는 이왕이면 한국적인 게 많았으면 좋겠다"며 "우리나라면 간판은 한글로 적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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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모씨(67)는 "이 근처엔 외국어 간판이 많아 한국 같지가 않다"며 "요즘 천지가 외국어라 힘들 때가 많다. 한국다운 게 많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시내 간판 7795개 중 외국문자만 적힌 간판은 21.2%인 1651개였다. 한글과 외국문자를 병기한 간판은 18.6%에 불과한 1450개였다.
간판에 한글 병기를 강제하는 법은 있다. 현행 옥외광고물법 시행령 제12조 2항은 간판 문자는 한글로 표시해야 하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외국문자와 함께 한글을 함께 써야한다고 명시한다.
이 시행령에도 외국문자 간판이 거리를 덮은 건 지방자치단체 신고·허가가 필요 없는 항목이 있기 때문이다. 해외업체의 외국어 상표나 5㎡ 이하 크기의 간판은 별다른 허가 절차 없이 설치할 수 있다.
한글 사용을 권장하기 위한 법의 취지는 살리되 우리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작업도 같이 진행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동훈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외국문자 간판 난립은 사회 풍조가 반영된 현상 중 하나일 뿐이다. 외국어로 쓰면 고급으로 보여 사업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한 듯 하다"며 "간판만을 규제하기보다 한글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가는 방향으로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