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고향사랑기부가 되려면[우보세]

머니투데이 이창명 기자 2024.10.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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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지난달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제1회 고향사랑기부제 우수사례 경진대회' 현장/사진=이창명 기자지난달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제1회 고향사랑기부제 우수사례 경진대회' 현장/사진=이창명 기자


지난달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제1회 고향사랑기부제 우수사례 경진대회'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소멸해가는 지방과 고향을 살리겠다는 지역 공무원들의 의지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 앞에서 하는 발표가 처음이었는지 목소리가 떨리는 발표자부터, 미리 준비한 열정적인 퍼포먼스로 참석자들을 사로잡은 발표자들까지 각양각색이었으나 내용도 전반적으로 훌륭했다. 기부모집 성과와 사업 계획들을 꼼꼼하게 살핀 심사위원들은 최종 우승 지역을 예단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을 정도였다.

고향사랑기부는 지역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주고 기부금을 모집하는 형태의 사업이다. 현장에선 마땅한 답례품이 없는 지역들의 고민이 많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이런 경우 담당 공무원의 개인기에 온전히 기댈 수밖에 없다는 어느 지역 발표자의 하소연이 인상적이었다. 여건이 좋건, 나쁘건 그렇게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금액을 모은 지역들이 있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인구소멸지역으로 분류된 지자체들도 지역의 숙원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됐다.



이날 발표 중 전남 영암군과 충남 청양군 사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영암군은 12억3600만원의 기부금을 모집했는데 이중 2억4000만원을 들여 지역숙원 사업인 소아청소년과 개원에 썼다. 영암군엔 20년 가까이 소아청소년과가 없었다고 한다. 자녀를 두고 있는 영암군의 부모들은 그동안 1시간 이상 차량을 타고 아이들의 진료를 보러 가야 했으나 이제는 역내 진료가 가능해졌다.

청양군은 유일하게 초·중·고 모든 과정에 탁구부를 운영 중인 정산 초·중·고등학교에 탁구부 훈련용품과 대회출전비 등을 지원하기 위한 기부금(5000만원)을 71일 만에 모아 박수를 받았다. 올해 정산 초·중·고로 30명의 학생이 전학을 왔는데 탁구부 지원사업 덕분이라고 했다. 청양군은 앞으로도 탁구에 특화된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두 지역의 사례는 고향사랑기부제도가 시행 첫 해 모인 기부금만으로 실제 지역사회에서 어떤 순기능을 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반면 영암군이나 청양군보다 훨씬 기부금을 많이 모은 지자체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확실한 사업 방향을 정하지 못한 곳들도 적지 않다. 내용을 살펴보면 모집한 금액보다 사업규모가 작거나 지역 주민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사업들도 있다. 현장에서 얘기를 들어보니 예상 밖에 너무 많은 기부금이 모여 사업계획을 변경하려는 곳도 있었다. 처음엔 그럴듯하다고 생각한 사업 아이템이었으나 지속 가능한 추진이 어려워 접어야 하는 속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고민이 많겠지만 어떤 사업이든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부담감으로 인해 어렵게 모은 기부금을 의미없이 사용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고향사랑기부제도의 취지 자체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말로 지역에 필요한 사업인지 따져보고 충분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고향사랑기부제는 국민들의 관심과 정성을 연료로 삼아야 지속 가능한 사업이다. 국민의 기부금이 허투루 사용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고향사랑기부가 되려면[우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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