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졸음 사고로 '기저질환' 뇌출혈 악화…"업무상 재해 맞다" 왜?

머니투데이 정진솔 기자 2024.10.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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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정법원/사진=뉴시스서울행정법원/사진=뉴시스


기저질환이 있던 교대 근로자가 출근길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내 뇌출혈이 악화된 사건에 대해 출퇴근 재해를 인정하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1단독 김주완 판사는 A씨(72)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소송에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경기도 파주의 한 사업장에서 락카룸 관리, 사우나 정리 등을 맡으며 교대 근무를 했다. 새벽조 근무 땐 오전 3시에 기상해 오전 4시 고양시에서 출발, 파주시에서 오전 5시부터 일을 시작해야 했다.

A씨는 2019년 3월 출근 도중 졸음운전으로 역주행을 해 반대편 차선의 전봇대를 박는 사고를 내 개방창이 없는 대뇌출혈, 기저핵의 뇌내출혈 진단을 받았다. 2021년 7월 A씨는 공단에 "사고로 뇌출혈이 악화됐다"며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에 따르면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로 부상·질병이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 재해로 본다.

하지만 공단은 뇌출혈이 이미 있어서 의식을 잃고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요양 급여를 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공단은 "A씨가 이전에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질환 등으로 치료받은 이력이 확인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업무와 이 사건에 따른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A씨는 공단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A씨는 "당시 사고로 차량 내부에 연기가 가득 차고 가스 냄새가 나는 등 급박한 상황에 처하자 두려움과 놀람으로 혈압이 상승하면서 뇌출혈이 촉발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설령 병으로 사고가 난 것이라고 해도 사업장에서 적절한 휴식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등 업무상 과로를 했을 뿐만 아니라 교대제 업무를 하면서 근로시간이 자주 변경돼 생체리듬이 깨진 것이 원인이 돼 뇌출혈이 발병 또는 촉발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A씨가 사고 직후 의식과 움직임이 있는 상태였다"는 목격자 진술을 근거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감정의는 법원에 '뇌출혈로 사고가 발생했다면 사고 발생 후 의식이 뚜렷하거나 정상적인 거동을 보이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의학적 견해를 냈다.

김 판사는 "A씨의 기저질환이 이 사건의 발생원인이라고 하더라도 A씨가 2010년 4월부터 8년 이상 별다른 문제 없이 근무했는데 사고 발생 당시 뇌출혈이 발병한 사실에 비춰보면 적어도 출근 중에 발생한 사고가 기저질환에 겹쳐서 뇌출혈을 유발 또는 악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근하던 중 발생한 사고로 발병했기에 산재보험법에서 정한 출퇴근 재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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