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도 승자의 저주…'치킨 게임'된 쩐의 전쟁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최경민 기자 2024.10.0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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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도 승자의 저주…'치킨 게임'된 쩐의 전쟁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측과 MBK·영풍 간 '쩐의 전쟁'이 '치킨 게임'으로 치닫는다. 양측이 공개매수가격을 수차례 끌어올린 가운데 추가 인상 가능성까지 열려있다. 현금 곳간이 먼저 마르는 쪽이 지는 형국이다. 이 같은 출혈 경쟁에서 누가 이겨도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최창규 영풍정밀 회장, 최창영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출자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제리코파트너스는 오는 7일 이사회를 열고 영풍정밀 공개매수 가격 인상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당초 MBK·영풍측의 영풍정밀 공개매수가격은 2만원이었다. MBK·영풍측 이 가격을 2만5000원으로 재차 올리자 제리코파트너스가 지난 2일 가격을 3만원으로 높이며 대항 공개매수에 나섰다. 그러자 MBK·영풍도 4일 가격을 3만원으로 끌어올리며 양측 가격은 현재 똑같은 상태다. 다만 MBK·영풍의 매수 예정 물량은 전체 영풍정밀 지분의 43.43%로 제리코파트너스의 25%보다 많다. 재계 한 관계자는 "MBK·영풍의 매수 예정 물량이 많아 최 회장측이 불리한 상황"이라며 "최 회장측이 가격을 더 올릴 가능성이 높은 셈"이라고 말했다.

양측이 이처럼 영풍정밀 가격 인상 레이스를 벌인 까닭은 영풍정밀이 고려아연 지분 구조상 일종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어서다. 최 회장측과 영풍 측 고려아연 지분율은 33%대에서 박빙이어서 영풍정밀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1.85%가 있고 없고는 큰 차이가 있다.



고려아연 본체에 대한 가격 인상 경쟁도 치열하다. MBK·영풍의 최초 고려아연 공개매수가는 66만원이었다. 이를 75만원으로 끌어올렸지만 최 회장측이 베인케피탈과 손잡고 83만원에 고려아연 자사주 18%를 사들이겠다고 선언하자 MBK·영풍도 똑같이 가격을 83만원으로 인상했다.

고려아연 공개매수가 역시 83만원에서 재차 상향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MBK·영풍의 공개매수는 오는 14일 종료된다. 고려아연측 자사주 공개매수(종료일 23일)보다 빨리 마무리 되기 때문에 주주 입장에선 같은 가격이라면 먼저 사준다는 MBK·영풍측 공개매수에 응할 가능성이 높다. 최윤범 회장 측이 재차 83만원 이상으로 가격을 올릴만한 근거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도 "1주가 들어오든, 300만주가 들어오든 모두 사들여서 반드시 고려아연의 기업 지배구조를 바로 세우겠다"고 했다. 앞으로도 양측이 가격 인상을 주고받으며 고려아연과 영풍정밀을 둔 쩐의전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열려있는 셈이다.

관건은 양측 자금력이다. 자사주 공개매수에 나서는 고려아연은 자기자금 1조5000억원, 차입금 1조2000억원 등 2조7000억원의 실탄을 마련해 놨다. 하나은행과 SC제일은행에서 받은 한도 대출 규모를 감안하면 여기에다 5000억원을 추가로 끌어올 수 있다. 단순 계산으로 고려아연 공개매수 가격을 95만원 이상으로 끌어올릴 만한 규모의 자금이다. MBK·영풍 뒤에는 MBK가 이번 공개매수에 동원하기위해 조성중인 최대규모 약 10조원의 6호 바이아웃펀드가 있다. 통상 펀드 정관 상 단일투자건 한도가 전체 규모의 20% 수준이지만 이 비중을 어떻게 설정해 뒀느냐에 따라 막대한 자금 동원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어느쪽이 이 같은 치킨게임에서 이기든 승자의 저주가 불가피하다는 게 재계 중론이다. MBK로선 공개매수에 성공해도 엑시트(투자금 회수) 과정에서 수익금 축소가 불가피해 진다. 공개매수 종료 후 주가 하락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가격을 끌어올린만큼 낙폭은 커지고 이익폭은 줄어든다. 최 회장 측으로서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경영권 분쟁에 따른 차입금 증가로 고려아연 미래 사업 투자 여력은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누군가는 승리하겠지만, '이긴 게 이긴 게 아닌 상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치킨게임으로 발생한 비용으로 인해 기업의 미래 사업 투자 등이 타격을 받는다면, 산업계에 득될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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