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비정상의 정상화

머니투데이 박미리 기자 2024.10.07 07:00
글자크기
"중국산 때문에 철강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국내 한 철강사 관계자가 시장 상황에 대해 한숨을 쉬면서 한 말이다. 국내 철강업계는 중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건설경기 부진으로 중국 내 건축자재 수요가 급감하면서, 중국기업들이 대규모로 쌓인 재고를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해외에 수출했기 때문이다. 중국기업들이 생산을 멈추지도 않았다. 이들의 저가 공급과잉 상태가 이어지면서 철강의 주요 원료인 철광석 가격이 하락했다.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린 한국기업들은 올해 영업이익이 반 토막 나는 등 실적이 크게 악화했다.

중국은 전 세계 철강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고, 전 세계 철강의 절반 이상을 소비하는 거대한 시장이다. 중국은 전 세계 철광석 수요의 70%를 빨아들이기도 한다. 전 세계 철강 시황에 중국의 영향력이 큰 이유다. 이 구조는 중국 경기가 좋을 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중국 경기가 부진하면서 문제로 떠올랐다. 세계 곳곳에서 저가 중국산 철강 공습의 피해를 본 국가들이 속출한 것이다.



피해국들은 자국 산업과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장벽을 쌓았다. 미국, 멕시코, 브라질, 일본 등은 중국산 철강에 관세를 강화했고 베트남, 튀르키예 등은 중국산 철강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다. 이 추세에 맞춰 한국도 지난 4일 중국산 후판에 대한 반덤핑 조사 개시를 결정했다. 후판은 국내에서 저가 중국산 철강 공습의 피해가 도드라지던 제품이다. 중국산 가격이 국산보다 톤당 10만~20만원 저렴하다 보니, 중국산 수입이 매년 급증했다. 국산 후판의 입지는 점차 좁아졌다. 결국 국내 철강사는 정부에 시장을 살펴달라고 요청했다.

철강은 대표적인 국가기간산업이다. 이러한 철강 시장에서 국산이 중국산에 밀려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리는 여러 경험을 통해 독점의 무서움도 배웠다. 처음에는 많은 혜택을 앞세워 소비자를 유인하지만, 시장 점유율이 높아질수록 소비자에 더 큰 대가를 요구한다. 철강 시장에서도 독점의 횡포가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운동장이 기울어졌다면 더 늦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개별 기업, 나아가 국내 철강 생태계가 경쟁력있게 존속할 수 있다.



박미리 /사진=박미리박미리 /사진=박미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