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절세와 탈세의 경계, 그리고 국민의 눈높이

머니투데이 전오영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2024.10.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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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화우의 조세전문 변호사들이 말해주는 '흥미진진 세금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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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고위공직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거론되는 단골 메뉴 중 하나가 탈세 의혹이다. 실제 탈세가 이루어진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주로 논란이 되는 것은 자녀들에게 재산을 이전하면서 가족 간 거래를 통해 세금을 줄였다는 이른바 '편법 증여'다.

공직 후보자는 그런 거래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실정법 위반은 아니라고 해명한다. 의원은 법 위반 여부는 뒷전이고 그런 자산승계 행위를 한 점 자체로 후보자 자질 문제가 있다면서 추궁을 계속한다. 양쪽 모두 실정법 위반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결국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행위를 했다며 후보자가 사과하는 일이 반복된다.



조세전문가의 눈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절세전략을 세워 자녀들에게 자산을 증여하는 행위를 비난하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 도대체 탈세와 절세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사과의 변에 있는 국민의 눈높이라는 표현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혹시 탈세와 절세의 경계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세간에 흔히 헌법보다 상위에 있다고 회자하는 이른바 '국민정서법'을 든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세금을 둘러싼 현장은 흡사 전쟁터와 같다. "이 세상에서 죽음과 세금 이외에 확실한 것은 없다"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마따나 누구도 세금을 피해 갈 수는 없다. 세금을 피하고 싶은 납세자는 세금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지만 과세당국으로서는 탈세를 막기 위해 꾸준히 조세 관련 법령과 제도를 정비하는 등 노력하며 공방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납세자는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절세 전략을 찾기는 하지만 모든 조세 전략에는 위험과 비용이 수반되므로 리스크도 떠안아야 한다. 반면 법치국가를 표방하는 우리나라의 과세당국 입장에서는 엄격한 법의 잣대로 해당 거래가 허위 또는 가장 거래인지 밝혀 실질과세 원칙 등 조세 법리에 따라 형식을 부인하고 실질에 따라 과세 여부를 판단하면 된다.

법리적 판단은 뒷전에 미뤄두고 법과 제도를 따른 절세전략을 국민 눈높이라는 잣대를 들이대 비난하는 것은 곤란하다. 물론 대중보다 높은 도덕적 수준을 갖춰야 하는 고위공직 후보자의 행위로서는 부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잘한 일이라고 칭찬할 생각도 없다. 다만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절세행위에 대해 단순히 '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할 수 있을까.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헌법상 대원칙은 고위공직자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것이 유리하든 불리하든 누구에게나 같게 적용돼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문제가 된 절세전략이 정히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아 허용할 수 없다면, 비난만 할 것이 아니다. 그런 행위를 방지할 입법적 노력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필요하다면 누구나 현행 법령의 테두리 안에서 절세전략을 수립하여 실행하고 이에 편하게 자문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법무법인 화우 전오영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전오영 변호사


전오영 변호사(사법연수원 17기)는 1985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9년간 각급 법원 판사로 근무하며 다양한 분야의 재판 실무 경험을 쌓았다. 1999년 변호사로 첫 걸음을 내딛으며 주로 조세 분야의 소송이나 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자산 관리 및 승계 관련 조세 분야의 전문가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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