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머니12'가 아닌 '랩퍼블릭'이었던 이유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2024.10.0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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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티빙/사진=티빙


매년 꾸준하게 방송됐던 '쇼미더머니'(이하 '쇼미')는 지난해 새로운 시즌을 제작하지 않았다. 엠넷은 부인했지만 사실상의 폐지인 셈이다. 대신 '쇼미' 제작진이 만든 오리지널 예능 'RAP:PUBLIC'('랩퍼블릭')이 공개됐다. 첫 주에 공개된 두 개의 회차는 왜 '쇼미더머니 12'가 아닌 '랩퍼블릭'인지 그 이유를 보여줬다.

지난 2일 첫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랩퍼블릭'은 랩을 무기로 삼아 전략적 생존 경쟁을 펼치는 리얼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연출을 맡은 최효진 CP 등 '랩퍼블릭'의 제작진에는 과거 '쇼미'를 만들었던 제작진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랩퍼블릭'이 공개되는 티빙과 '쇼미'가 방송됐던 엠넷은 같은 계열사다. 같은 이름을 공유하고 있지 않지만 '랩퍼블릭'은 '쇼미'의 정신적인 후속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본다면 '랩퍼블릭'에서는 '쇼미'의 향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큰 차이는 프로그램의 포맷이다. '쇼미'는 지원자와 심사위원이 존재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랩퍼블릭'은 60명의 래퍼가 살아남기 위해 랩으로 경쟁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박재범이 MC로 나서긴 하지만, 참가자들의 랩을 평가한다기보다는 진행에만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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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차이는 TV가 아닌 OTT를 통해 서비스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차이는 '랩퍼블릭'에게 많은 자유도를 줬다. 일단 출연진에 제약이 없어졌다. '랩퍼블릭'에 모습을 드러낸 참가자 중에는 '쇼미'였다면 모습을 보지 못했을 참가자들이 있다. '쇼미'의 단골손님이기도 했던 오왼이 대표적이다. 오왼은 자신의 마지막 '쇼미'였던 '쇼미더머니9' 출연 당시 마약 논란으로 중도 하차했다. 기소유예를 받은 오왼은 이후 시즌에 슬쩍 참가 의사를 내비쳤지만, 실제로 출연이 성사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랩퍼블릭'은 과감하게 오왼을 출연시켰다.

묵음 처리가 없어졌다는 부분도 긍정적이다. '쇼미'가 몇 차례 지속되는 가운데 시청자들이 아쉬움을 나타낸 점은 묵음 처리와 관련된 지점이다. 강렬하고 직설적인 가사가 많은 힙합의 특성상 많은 참가자들은 욕설과 거친 단어를 가사에 적었지만 방송에서는 심의 등의 문제로 인해 묵음처리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OTT로 넘어온 '랩퍼블릭'은 여과 없이 참가자들의 랩을 들려주며 순식간에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사진=티빙/사진=티빙

높은 자유도가 생겼지만 이를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지난 2일 공개된 '랩퍼블릭' 1~2화는 이 프로그램이 가진 정체성을 명확하게 보여줬다. 이런 유의 서바이벌에서는 참가자들이 한 명씩 등장하며 자신을 소개한 뒤 첫 미션이 진행되기 마련이지만, '랩퍼블릭'은 60명의 참가자가 동시에 등장한 뒤 1대1 대결을 통해 차례대로 순서를 공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다른 참가자들이 오로지 랩으로만 승패를 가린 것처럼 시청자들 역시 참가자들의 랩을 먼저 들으며 선입견 없이 이들을 평가할 수 있었다.

리더들의 무한 싸이퍼 역시 마찬가지였다. 끊임없는 공격에도 랩을 받아치는 JP를 비롯해 플리키뱅, 루피 등 다른 리더들의 랩은 말 그대로 홍수처럼 쏟아졌다. 동시에 이들이 랩이라는 장르에 대해 얼마나 진심으로 임하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늘어지거나 자극적인 편집 대신 빠르고 밀도 높은 전개 방식을 통해 참가자들이 가진 실력과 진정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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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과 랩이라는 장르르 비롯해 여러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랩퍼블릭'은 '쇼미'와는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다. '쇼미'가 힙합이라는 장르를 기반으로 대중성에 초점을 맞추며 폭넓은 사람에게 다가갔다면, '랩퍼블릭'은 조금더 마니아틱한 성향이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랩퍼블릭'은 '쇼미'를 대체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들 만의 바운더리를 새롭게 만들어나가며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다만, 첫 주차의 밀도 높은 랩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지는 미지수다. 서바이벌 예능을 표방한 '랩퍼블릭'은 래퍼들이 형성한 블럭을 중심으로 다양한 서사와 갈등을 예고했다. 그리고 갈등과 서사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랩의 비중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쇼미'라는 검증된 문법을 따르지 않고 새롭게 기반을 다지기 시작한 '랩퍼블릭'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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