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적대적 M&A

머니투데이 박재범 경제부장 2024.10.07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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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적대적 M&A(인수합병)가 등장한 게 50년 전이다. 김화진 서울대 로스쿨 교수의 저서 '이사회 경영'에 소개된 사례를 보면 1974년 캐나다의 니켈회사 잉코(Inco : International Nickel Company)가 필라델피아 소재 배터리 제조회사 ESB를 적대적으로 인수한 게 첫 사례다.

공격을 당한 ESB 경영진이 잉코의 행위에 대해 '적대적(hostile)'이란 단어를 사용한 게 '적대적 기업인수(hostile takeover)' 용어로 정착됐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역사적인 '쩐(錢)의 전쟁'이 펼쳐진다. 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싼 싸움이다. 공개매수, 방어적·대항적 공개매수 매수 등 M&A의 기본 전술이 구사된다. 금액, 시기 등을 둘러싼 전략 대결도 펼쳐진다. 소송 등 법적 공방과 여론전은 양념이다.

당사자들에겐 피 말리는 싸움이지만 관전자에겐 이만한 흥밋거리도, 공붓거리도 없다. 자사주 공개 매수 관련 법적 근거 논란이 일단락되니 취득 규모가 쟁점이 된다. '배당 가능 이익 한도 내' 자사주 취득 조건에서 뜻하는 배당 가능 이익의 정의 등은 전쟁의 승패를 떠나 이어질 법적 논쟁거리다.



이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전쟁의 성격이다. 전쟁에 몰입하다보면 '쩐(錢)' 싸움에만 흥분한다. 전쟁의 성격, 본질은 잊혀진다. 그 속에 도사린 위험도 덮여진다.

# 이번 전쟁의 등장인물은 영풍, MBK, 고려아연 등 3자지만 결국 전쟁의 주체는 MBK와 고려아연 경영진이다. 싸움의 목적은 경영권 확보다.

MBK는 최대주주 지분을 넘겨받은(실제론 넘겨받기로 한) 데 따른 자연스런 '경영권' 인수 작업이란 입장이다. 고려아연은 '경영권'에 대한 적대적 공격으로 본다.


'경영권'은 무엇일까. 상법 393조는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고 규정한다. 김화진 교수는 이 조항을 근거로 "원칙적으로 회사의 경영권은 회의체인 이사회가 행사한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이사회를 장악한 자가 경영권을 가진 자가 된다. 통상 최대주주가 이사회를 장악하는데 고려아연은 최대주주(영풍)가 이사회를 거느리지 못한 기이한 형태를 가졌다.



경영권 확보의 제1단계는 이사회 설득이다. 이사의 충실 의무에 따라 회사의 가치만 중시해야 하는 이사들에게 회사 미래, 경영 전략 관련 설득하는 게 M&A의 출발이다. 이사회가 반대할 때 시장에서 공개매수를 통해 이사회 장악에 나선다. 그것을 적대적 M&A라고 부른다. 우리가 관전하고 있는 전쟁이다.

# 고려아연 전쟁은 적대적 M&A다. 공격자와 방어자가 분명하다. 감정적 접근은 필요없다. 공격자가 멋지다고, 방어자가 불쌍하다고 승패가 갈리는 게 아니다. 이분법적 접근도 안 된다. 시장에 선악(善惡)은 없다.

중요한 것은 위치(공격자·방어자)에 따른 역할과 자격이다. 공개 매수 가격 뿐 아니라 경영전략, 기간산업의 미래, 향후 매각 계획 등을 설명할 책임은 공격자에게 있다.



"왜 MBK가 고려아연을?"이란 질문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도 같은 선상에 있다. 유통업체 홈플러스, 아웃도어 전문업체 네파 등을 인수한 뒤 보여준 MBK의 경영 능력에 물음표가 붙는 게 현실이다.

시장의 근본적 질문과 걱정은 MBK의 자격이다. 펀드 조성 때 공적자금을 받는 MBK가 기업 사냥에 나서도 되느냐는 문제다. 더 나은 주인을 찾기 위한 적대적 M&A에서 주인 자격이 따로 있진 않다. 다만 일반적으로 공적연금을 운용하는 펀드는 우호적 M&A에 주력한다.

반면 MBK가 행동주의 펀드를 자처한다면 다른 돈줄을 활용하는 게 맞지 않냐는 거다. 현 모양새라면 연금이 PE를 도구삼아 적대적 M&A에 나설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니까 말이다.



이번 전쟁의 승패를 떠나 MBK를 향한 걱정이 남는다. 그리고 시장에 숙제를 던졌다. 사모펀드, 적대적 M&A 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동아시아 넘버1 PE가 오히려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지. 맏형이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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