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4.10.0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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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사견(思見)

(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에서 열린 영풍과 MBK와의 경영권 분쟁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4.10.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에서 열린 영풍과 MBK와의 경영권 분쟁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4.10.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75년 동업의 운명을 가를 날이 다가오고 있다. 영풍과 고려아연의 관계가 경영권 분쟁으로 흔들리고 있다. 황해도 사리원 출신의 '최기호'와 '장병희'가 월남해 영풍기업사를 함께 세운 1949년 이후 최대 위기다. 초기에 절반씩 투자한 두 공동 창업자는 30년 이상 훌륭한 파트너로 사업을 키웠다. 발동기 장사를 하던 최 창업자가 외상으로 기계류를 광산에 대주면서 광업에 발을 내디딘 게 시작이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사장을 맡으면 다른 사람은 회장을 맡는 식으로 영풍상사와 영풍광업의 사장과 회장을 번갈아 나눠 맡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두 사람이 국내 고액납세자 상위 10위권에 들어가기도 했다. 일제시대 개발된 연화광산을 뿌리로 아연광 수출에서 아연제련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1974년 정부가 중화학공업화 6대 핵심 사업 중 하나로 비철금속공업 육성 계획을 추진한 게 고려아연의 시작이다. 석포제련소에 이어 영풍상사가 온산비철금속 단지 내 온산아연제련소를 건설한 게 시발점이다. 이때 건설에 투입된 국제금융공사(IFC) 차관과 일반 차관 2375만 달러는 고려아연 성장의 자양분이 됐다. 정부의 지원 덕이다. 영풍은 석포제련소를, 고려아연은 온산제련소를 각각 운영하며 성장해 나갔다. 두 제련소는 각각 장씨와 최씨 가문의 대표 사업장이자, 양 집안의 동업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1977년 영풍의 초기 지분이 장병희 창업주 26.8%, 최기호 창업주 25.8%로 1% 포인트 밖에 차이가 없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구조가 변해갔다. 1980년 최기호 영풍 명예회장이 별세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최씨 집안에서 창업주의 장남인 최창걸 부회장이 경영에 참여했고, 두 집안은 1989년경 인사와 자금 등 여러 면에서 분리 경영을 시작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장씨 가문은 영풍·영풍광업·영풍기계·영풍건설·영풍트레이딩·영풍개발 등을, 최씨 가문은 고려아연·서린금속·영풍정밀·코리아니켈을 나눠 운영했다.



지주회사 영풍 지분은 현재(2024년 10월2일) 장형진 영풍 고문(장병희 창업주의 차남) 측이 52.65%,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최기호 창업주의 손자) 측이 16.9%로 장 고문 측이 영풍그룹의 지배권을 갖고 있다. 고려아연 지분도 우호 지분을 빼고 두 집안만 따지면 장 고문 측이 33.13%(영풍 25.4% 포함), 최 회장 측이 15.64%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갈등은 배당금과 미래 투자비전의 이견이 불씨가 됐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지난 2일 최 회장이 서울 그랜드하이얏트호텔에서 연 기자회견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이 있었으나 그는 답하지 않았다. 장 고문 측은 최 회장이 몇 년 전부터 한화·LG·현대자동차 등과 손잡고 우호 지분을 늘린 것을 경영권에 대한 도전으로 봤다. 최 회장은 이들 3개 그룹과 주식 맞교환이나 유상증자를 통해 우호지분을 포함해 33%로 엇비슷하게 맞추자 장 고문 측은 이를 대주주에 대한 반란으로 보고 반격에 나섰다.

반면 최 회장은 이같은 장 고문과 영풍의 반격(MBK와의 주식공개매수)이 오히려 경영권을 위협하는 행위이자 회사를 위험에 빠트리는 일이라며 경영권 방어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2일 기자간담회에서 최 회장은 "공정거래법상 동일인 총수는 장형진 고문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영풍이 25%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라고 해서 고려아연의 주인일 수는 없다"며 "25%가 주인이면 나머지 75%는 종입니까"라고 반문했다. 이어 "제가 고려아연의 의장인 이유는 고려아연 주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도, 최 씨이기 때문도 아닌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이사로 뽑아주셨고 이사회에서 저를 임명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원론적인 답변이다. 정부의 지원과 주주들의 신뢰, 종업원들과 경영진의 노력으로 성장한 기업은 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게 그의 말이다. 그동안 재계에서 일반적으로 얘기돼왔던 것(지분이 많은 대주주가 임자라는 것)과 다르게 '기업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4일 양측은 수조원을 들고 공개매수와 자사주 매입으로 맞붙는다. 고려아연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그 결과는 주주들의 지지표를 통해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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