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각장애인연합회 종로구지회에서 주최한 e-스포츠 연습 경기 모습. /사진=독자제공
지난달 28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내자동의 한 건물. 총성과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대형 격투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법한 이 곳에선 액션 격투게임 '철권 8' 대결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게임패드를 잡은 남성과 여성 모두 처음에는 버튼을 누르는 손매가 서툴러 애를 먹는 듯했지만 이내 아랫입술을 깨물며 게임에 몰입했다. 1~2분 동안 이어진 치열한 결투 끝에 "유 윈"(YOU WIN·당신이 승리했다)이라는 게임 안내음성이 나오자 여성 참가자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게임 패드와 소리에 집중"… 시각장애인이 e-스포츠 즐기는 법
지난달 28일 서울시 종로구 내자동의 한 건물에서 시각장애인들은 e-스포츠 경기를 즐기는 모습. /사진=김지은 기자
e-스포츠의 경우 시각장애인은 게임 화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소리가 중요하다. 이날 e-스포츠 연습게임 현장을 지원한 자원봉사자는 "잘 들어보면 타격 소리, 방어 소리, 맞는 소리가 모두 다르다"며 "사람 목소리도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환호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구분하면서 게임 조작기를 누르면 된다"고 말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는 자원봉사자가 시각장애인과 함께 게임패드의 버튼을 누르면서 각각의 기능을 설명한다. 위쪽 버튼으로는 게임 캐릭터의 주먹 기술, 아래쪽 버튼으로는 발차기 기술을 쓸 수 있다고 알려주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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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이 자원봉사자 도움을 받아 게임 조작기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 /영상=김지은 기자
게임이 시작되자 시각장애인들은 한동안 게임패드 조작법을 익히면서 공격·방어 소리에 적응하는데 집중하더니 어느 정도 조작법에 익숙해지자 캐릭터 위치가 맞는지, 상대편을 정확히 조준했는지 물었다. 상대편을 정확히 공격하면 게임패드가 미세하게 진동해 직접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게임을 좀더 쉽게 할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들 "접근성 메뉴, 한국어 음성 지원 활발했으면…"
시각장애인이 e-스포츠 연습 경기에 나선 모습. 화면에는 "YOU WIN(당신이 승리했다)"는 안내 문구가 떴다. /영상=김지은 기자
서울시각장애인연합회 역시 이달 19일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철권8' e-스포츠 대회를 연다. 참가 인원은 총 12명, 나이대는 20~40대까지 다양하다. 올해 연습경기에 4차례 참여했다는 시각장애인 김선영씨(47)는 "e-스포츠를 즐길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막상 해보니 스트레스도 풀리고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겨루니 이기고 지는 게 재밌다"고 말했다.
e-스포츠가 신체 장애를 넘어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발전하려면 장애인을 위한 게임 접근성 메뉴와 음성 지원이 더 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출시된 신작 게임인 '철권8'은 한국어 음성이 지원되지 않아 자원봉사자가 없이 시각장애인이 홀로 캐릭터를 선정하고 환경 설정을 변경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전석 서울시각장애인연합회 재정위원은 "미국에서 만든 '더 라스트 오브 어스'라는 게임은 아이템 설명이나 획득법을 음성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타격 소리, 점프 소리 같은 게 뚜렷하게 구분돼서 시각장애인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며 "장애인을 위한 섬세한 게임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