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논쟁이 필연적으로 담긴, ‘보통의 가족’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4.10.0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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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가족' 스틸 / 사진=(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보통의 가족' 스틸 / 사진=(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


영화 ‘보통의 가족’(감독 허진호)에서 고민은 필수적이다. 부부인 재규(장동건)와 연경(김희애)은 형네 부부가 제안한 노모의 요양원 행을 고민하고, 재완(설경수)은 사고를 크게 친 국회의원 아들(유수빈)의 변호 의뢰에 아주 잠시지만 고민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큰 고민은 시나리오를 읽으며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았다던 학부형 장동건의 말처럼, 지독하게 현실적인 자식(子息)에 대한 것이다.

‘당신의 자녀가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살인에 대한 정황 증거가 뚜렷하지 않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영화를 사납고 쥐고 흔드는 질문이자, 영화 속 네 주인공에게 던져진 가장 큰 고민이다. 이 고민은 설경구, 김희애, 장동건, 수현의 밀도 높은 연기에 의해 관객에게도 전이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드는 텁텁함은 충분히 현실 가능한 이 잔혹한 질문에 양심이 뒤틀리는 애매한 경계에 갇히기 때문이다. 정답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부모의 마음은 계속 다른 말을 하므로.

'보통의 가족' 스틸 / 사진=(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보통의 가족' 스틸 / 사진=(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


‘보통의 가족’에서 재완의 딸과 재규의 아들은 함께 노숙자를 폭행해 중태에 빠뜨리는데, 이 노숙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결국 숨을 거둔다. 아이들은 이 일을 부모들에게 말하지 않고, 부모들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커다란 사건 앞에서 부모와 아이는 대화하지 않는다. 불편한 주제는 대체로 회피하는, 한국 사회의 통상적 부자(녀)간의 모습을 잘 담아낸 지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영화는 형제인 재완과 재규에게 같은 고민을 던지고 다른 선택을 하게 한다. 재완은 물질적 욕망을 우선시하며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변호사다. 재규는 원리원칙을 중요시 여기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 자상한 소아과 의사다. 사건을 알게 된 직후 재완은 이익을 최우선으로 좇던 성향처럼 딸의 범죄로 입을 피해를 막기 위해 이를 묻으려고 한다. 반면 의사로서 정의롭게 살아온 재규는 아들의 멱살을 잡아 끌고 경찰서 코앞까지 간다.

하지만 마지막에 둘의 입장이 바뀐다. 재완은 딸을 자수시키려 하고, 재규는 그런 형을 말린다. 급기야 재규는 눈을 희번득한 채로 파국의 결말을 맞는다. 재완이 마음을 돌린 데에는 전환점이 존재한다. 자신의 늦둥이 딸 방에서 아이들이 나눈 대화를 우연히 엿들은 것이 재완의 마음을 돌렸다.


'보통의 가족' 스틸 / 사진=(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보통의 가족' 스틸 / 사진=(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재규의 변심이다. 아들의 뺨을 내리치며 자수시키려던 청렴했던 이 아버지는, 형의 입을 막기 위해 상상치 못할 일을 저지른다. 정의와 이념을 순식간에 상실한다. 극 중 재규의 변화는 다소 급작스럽게도 비치는데, 오히려 서사 없이 다급하게 이뤄진 변화가 애초부터 마지막과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는 의심을 하게 한다. 재규를 연기한 장동건도 그렇게 해석했다. 때문에 자신은 대놓고 드러내진 못했지만 이를 대신해 행동했던 재완의 변심이 재규에게는 분노로 작용했을 것이다. 부모의 입장을 깊이 헤아리면 재규의 급발진도 영 이해하지 못 할 것은 아니다.



그래서 ‘보통의 가족’은 모든 부모에게 향한다. 절로 골몰할 수밖에 없는 참혹한 질문을 고민하게 하면서, 끝내는 내 아이가 그렇게 자라지 않도록 어떻게 잘 키울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재완이 옳은가 재규가 옳은가에 대한 정답도 없다. 그저 고민할수록 이상에 다가서도록 도울 따름이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이 불가피하게 된 두 가장. 둘의 의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것처럼 지켜보는 이의 마음도 쉽사리 한쪽 편에 서기 어렵다. 명확하게 남는 것은 은밀하게 뒤틀린 내면에 대한 회한이다. 소모적인 것이 아닌 진정한 논쟁이 필연적으로 담긴, ‘보통의 가족’의 질문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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