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구 엄청 좋았는데 안 던지더라" 상대도 감탄했는데 왜? 곽빈 '1이닝 4실점' 미스터리 [WC1 현장]

스타뉴스 잠실=안호근 기자 2024.10.03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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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곽빈이 2일 KT와 WC 1차전 2회초 조기강판돼 불펜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두산 곽빈이 2일 KT와 WC 1차전 2회초 조기강판돼 불펜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전광판에 156㎞가 찍혀서 번트대기가 쉽지 않겠다 싶더라고요."

결승타의 주인공 장성우(34·KT 위즈)도 혀를 내두른 상대 에이스지만 1이닝 만에 무너져내렸고 결국 조기 강판됐다. 다승왕의 명성에 금이 갔다.

곽빈은 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T 위즈와 2024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WC) 결정 1차전에 선발 등판해 1이닝 동안 36구를 던져 5피안타 2볼넷 1탈삼진 4실점, 패전 투수가 됐다.



전혀 예상도 못했던 결과다. 상대는 전날 5위 타이브레이커까지 치르고 와 체력적으로 부담이 많았고 시즌 상대전적에서도 12승 4패로 완벽히 앞섰다. 결정적으로 선발 등판한 곽빈은 올 시즌 KT전 6경기에 등판해 5승 평균자책점(ERA) 1.51로 '킬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경기 전 공식 인터뷰에 나선 이승엽 감독은 "곽빈이 5,6이닝을 던지는 게 베스트 시나리오다. 이후 이영하, 홍건희, 김강률이 (김)택연이까지 연결해준다면 베스트"라며 "다만 단기전이고 길면 내일, 짦으면 오늘 끝날 수 있기에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빈이가 길게 가면 좋지만 분위기나 몸 상태 등에 따라 빠른 교체 타이밍도 생각해볼 것이다. KT를 상대로 좋았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도록 잘 서포트하겠다"고 말했다.



곽빈의 투구를 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곽빈의 투구를 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그러나 상황은 기대와 정반대로 흘러갔다. 올 시즌 KT전에서 극강의 면모를 보였고 1회 피안타율도 0.187에 불과했던 곽빈이지만 가을야구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 선두 타자 김민혁을 5구 만에 볼넷을 허용한 곽빈은 멜 로하스 주니어, 장성우, 강백호에 이어 오재일까지 4연속 안타를 맞고 2사에서도 배정대에 안타를 맞고 4실점했다. 아웃카운트 3개도 하나는 희생번트, 하나는 상대 주루사로 인한 것이었다.

2회에도 등판했지만 선두 타자에게 볼넷을 허용한 곽빈은 결국 조던 발라조빅과 교체됐다. 최고 구속이 시속 156㎞에 달했지만 36구 중 스트라이크가 21구에 불과할 만큼 제구가 안정되지 못했다.

강력한 위력을 자랑한 속구는 19구를 던졌는데 12구가 스트라이크가 됐을 정도로 이날의 가장 좋은 무기가 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곽빈의 속구 구사는 절반 수준에 그쳤고 결국 KT 타선에 난타를 당하며 무너지는 계기가 됐다.


1회 5개의 피안타 중 직구에 의한 건 로하스에게 맞은 것 하나였다. 이마저도 4구 연속으로 던져 로하스의 눈에 들어왔던 터라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김민혁의 볼넷과 로하스의 안타로 잡은 무사 1,2루 기회. 타석엔 장성우가 나섰다. 올 시즌 곽빈 상대 타율 0.333(9타수 3안타)으로 강했던 장성우조차도 위압감을 느낀 구위였다. 경기 후 만난 장성우는 "1회에 1,2루가 됐는데 원래 스타일상 그 상황에서 번트를 댄다. 감독님께서 사인을 안 주더라도 이런 중요한 경기에는 선취점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뒤에 (강)백호가 요즘 (타격감이) 좋아서 대려고 생각을 했는데 타석에서 보는데 곽빈 선수가 공이 너무 좋더라. 전광판에 156㎞도 찍히고 번트대기 쉽지 않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번트를 성공시키더라도 삼진이 잘 없는 백호가 칠 수 있는 그런 투수였다면 어떻게든 댔을텐데 내가 치는 것보다 번트를 대는 게 더 확률이 떨어지겠다 싶어서 그냥 쳤다"고 말했다.

1회초 결승타를 날리고 미소를 짓는 KT 장성우. /사진=김진경 대기자1회초 결승타를 날리고 미소를 짓는 KT 장성우. /사진=김진경 대기자
사실 이날 KT가 곽빈을 대하는 상대법이기도 했다. 올 시즌 내내 곽빈에 시달렸고 곽빈 상대 팀 타율은 0.175에 불과했다. 이날 안타를 친 강백호는 타율 0.077(13타수 1안타), 오재일은 0.111(9타수 1안타), 배정대도 0.100(10타수 1안타)에 불과했다.

장성우는 "전력 분석도 했지만 타격 코치님들께서도 말씀하셨고 선수들도 다 곽빈 선수 혼자 KT전 6경기에 나와서 팀은 한 번도 안 지고 혼자 5승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15승 중 5승을 우리에게 했다"며 "우리는 부담스러울 게 없었다. 유한준 타격 코치님도 '못 치는 걸 어떻게 하겠냐'며 '놓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쳐라,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해주셨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타석에 선 게 성공의 비결이 됐다. 장성우는 "직구가 엄청 좋았는데 하나도 안 던지더라"며 "슬라이더와 커브가 다 맞았다. 2스트라이크가 되고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앞타자를 진루시켰으면 좋겠다, 삼진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해 무조건 공을 맞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실투가 나왔다. 어떻게 안타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눈 감고 쳤다"고 미소를 지었다.

누구보다 좋은 공을 갖고도 너무 생각이 많았던 것일까. 상대가 가장 무서워하는 무기를 두고 수싸움을 걸다가 스스로 놓은 덫에 걸려버렸다. 장성우 타석부터 변화구 구사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고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으로 2안타씩을 맞고 4실점했다. 두산이 이날 준 점수가 모두 1회초에 나와 더 뼈아팠던 장면이었다.

분위기를 넘겨준 두산은 벼랑 끝으로 몰렸다. 역대 9차례 WC에서 단 한 번도 5위 팀이 준플레이오프로 향한 적이 없었지만 분위기는 KT 쪽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2차전에선 두산이 최승용, KT가 웨스 벤자민을 내보낸다. 최승용은 올 시즌 장기화된 부상으로 12경기 출전에 그쳤는데 그 중 선발 등판은 6차례에 불과했다. 벤자민도 ERA 4.63으로 다소 아쉬움이 남기는 했지만 11승(8패)을 챙긴 투수다. 이승엽 감독은 경기 후 2차전에서 곽빈은 물론이고 이날 4이닝 58구 무실점 호투를 펼친 조던 발라조빅까지도 대기할 수 있는 총력전을 치르겠다고 선언했다. 곽빈의 충격적인 부진으로 상황이 단단히 꼬여버렸다.



곽빈(오른쪽)이 고개를 숙인 채 발라조빅과 교체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곽빈(오른쪽)이 고개를 숙인 채 발라조빅과 교체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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