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비용의 ‘양질 배움터’ 자리매김…남양주 상상누리터를 가다

머니투데이 신재은 기자 2024.10.0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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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세상을 바꾸는 정책]최초 지자체형 돌봄센터, ‘이곳’ 아이들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편집자주 얼마큼 효율적인 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주민 삶은 크게 달라진다. 우리 동네에 ‘안심가로등’을 설치하는 것부터 출산과 양육 지원까지 모두 정책의 영역이다. ‘체험 세상을 바꾸는 정책’은 기자가 직접 정책 현장을 찾아가는 코너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해당 정책의 실효성을 검증한다. ‘더 좋은 정책’을 위해 대안을 제시, 독자들과 정책 대상자들에게 사랑받는 코너로 자리 잡는 게 목표다.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상상누리터 진접장승센터/사진=신재은 기자▲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상상누리터 진접장승센터/사진=신재은 기자


“선생님~ 저 왔어요. 오늘 미술 수업 하는 날이죠?”

지난 9월 11일 오후 1시 15분 무렵, 본인 몸만 한 가방을 멘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익숙한 듯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에 위치한 한 센터로 들어왔다. 학교 수업에 지쳤을 법도 한데 아이들의 입가엔 친구들과 놀 생각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센터장과 담당선생님은 아이들을 반기며 출석 확인 카드를 찍었다. 하교 후의 아이들이 모이는 이곳은 남양주형 초등돌봄센터 ‘상상누리터’다.

취재를 한 수요일은 영어와 미술 수업을 진행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다. 오후 1시 30분이 되자 1~2학년의 영어 수업이 먼저 진행됐다. 상상누리터 진접장승센터는 학습 단계에 맞춰 1~2학년과 중고학년의 수업을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은 고사리손으로 책을 펼쳐 선생님을 따라 단어를 읽기도 하고, 그림과 맞는 영단어를 잇기도 했다.



40여분의 영어 수업이 끝난 뒤 간식 준비로 주방이 분주해졌다. 경기도가 제공하는 ‘어린이건강과일’과 지역에서 후원받은 빵으로 간식 식판이 채워졌다. 아이들은 공용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크림빵과 배를 먹으며 장난을 치거나 책을 읽기도 했다.

오후 3시엔 미술 수업이 시작됐다. 홍지원 어린이(2학년)는 “예쁜 것을 많이 그려보는 미술 수업이 제일 재밌다”며 웃었다. 이날의 수업은 파스텔과 물감을 활용해 동굴과 빛을 표현하는 내용이었다. 상상누리터 진접장승센터의 박혜정 센터장은 “미술 수업은 다양한 교구를 활용하고 자신의 느낌을 표현해보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자기 주도 활동 시간이 이어졌다. 태블릿 PC를 활용해 개인 학습을 하거나 책을 읽는 등이다. 센터 한켠에서 보드게임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채윤 어린이(3학년)는 “학교에서 하는 돌봄프로그램도 참여했었는데 상상누리터가 캘리그래피, 미술 수업, 영어 수업 등 활동이 다양해서 더 재밌다”고 말했다.

원도심과 신도시 돌봄 공백 채우는 상상누리터
▲아이들이 태블릿 PC로 개인학습을 하고 있다./사진=신재은 기자▲아이들이 태블릿 PC로 개인학습을 하고 있다./사진=신재은 기자
상상누리터는 남양주시가 전국 최초로 진행한 지자체형 초등돌봄센터다. 원도심과 신도시 각각 다른 이유로 늘어나는 돌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기획됐다. 남양주시의 원도심은 생활편의시설 부족으로 아동 돌봄 환경을 조성하기 어려웠고, 신도시에는 젊은 세대가 유입되며 돌봄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이었다.

상상누리터 사업을 맡은 남양주시 여성아동과 담당자는 “원도심 지역 내에는 주민공동시설이 부족해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다함께돌봄사업 체계 안에서 돌봄센터를 확보하기 어려웠다”며 “인구가 늘어나는 신도시 지역 또한 돌봄 수요의 증가로 돌봄 사각지대가 존재했었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남양주시는 돌봄 수요 예측 분석을 통해 맞벌이 가구, 취학 연령층, 학교돌봄 대기 인원 수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상상누리터를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돌봄 공간은 평일에 비어 있는 유휴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공모 결과, 유휴 공간을 보유한 지역 내 종교시설 3곳이 선정됐다. 시 관계자는 “종교단체가 기존에 보유한 음악실, 체육실, 카페 등을 상상누리터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어 보다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렇게 지난 3월 상상누리터 3개소(별내물댄동산센터, 진접장승센터, 진접소망센터)가 문을 열었다. 10월 중 상상누리터 오남푸른숲센터가 추가로 개소한다. 종교단체는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시는 운영금 일부와 기본 인건비를 제공한다.



피아노·미술 교육·스포츠교실…돌봄에 교육까지 교육비 절감 효과↑
▲ 상상누리터 진접장승센터에서 미술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사진=신재은 기자▲ 상상누리터 진접장승센터에서 미술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사진=신재은 기자
상상누리터는 정기 및 일시 돌봄, 기초 학습 지도와 숙제 지도, 간식 및 급식(방학 중) 지원을 기본으로 한다. 학기 중에는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방학 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한다. 소득 기준에 상관없이 맞벌이가정 등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초등학생이 이용할 수 있다.

상상누리터 각 센터는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별내물댄동산센터는 피아노, 합창, 스포츠교실, 독서논술, 연산지도 등의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진접소망센터는 줄넘기, 한자 지도, 피아노, 탁구 등을, 진접장승센터는 AI 활용 교육과 캘리그래피,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오남푸른숲센터는 공유주방을 활용해 요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작은도서관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프로그램과 세부 운영 방향이 다르기에 이용료도 다르다. 남양주시 상상누리터 담당자는 “센터 월평균 이용 요금은 2만6000원으로 교육비 절약에 도움이 된다는 학부모님들의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상상누리터의 특징은 학생들의 일정을 배려한다는 점이다. 한 학생이 하교 후 센터에 머물다 태권도 학원 수업을 들은 후 다시 센터로 돌아오는 식이다. 박혜정 센터장은 “학생 개개인의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가 들기는 하지만 아이들의 돌봄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에 이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이용자들의 만족도는 높다. 상상누리터에서 만난 학생들은 “언니·오빠,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즐겁다”는 반응이다. 센터 이용 전에는 학교 돌봄에 참여하거나 하교 후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이 상상누리터에 모여 공부하고 성장할 수 있게 됐다.

진접장승센터에서 만난 윤민준 어린이(3학년)는 “센터 다니기 전에는 학교 돌봄을 하고 집에 가곤 했는데 상상누리터에 함께 놀 수 있는 친구가 더 많아서 센터에 오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윤비주 어린이(2학년)는 “태블릿 PC를 이용해서 하는 공부도 재밌다. 앞으로 공놀이 같은 체육활동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박 센터장은 상상누리터가 함께 놀고 공부해 공동체 의식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그는 “선생님들이 지도를 하고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다 보니 공부습관을 길러주기에 좋다”고 설명했다.

학부모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진접장승센터에 자녀 돌봄을 맡기고 있는 학부모는 “학교 돌봄은 함께 지내는 아이들이 어떤 친구들인지 알지 못하는데 이 센터는 놀이터에서 보던 동네 친구들이라 안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돌봄의 양적·질적 수요 충족…내년엔 운영주체 다변화 계획
▲간식을 먹고 있는 아이들/사진=신재은 기자▲간식을 먹고 있는 아이들/사진=신재은 기자
상상누리터는 돌봄서비스 소비자들에게 훌륭한 대안이 됐다. 2024년 10월 기준으로 상상누리터 4개소에서 정기 돌봄서비스를 이용하는 아동은 70여 명이다. 시 관계자는 “주변 초등 돌봄시설 이용 대기 인원이 평균 8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상상누리터 사업은 지난 8월 2일 열린 ‘2024년 경기도 저출생 대응 우수시책 경진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하며 효과를 인정받기도 했다.



상상누리터는 변화를 앞두고 있다. 올해 처음 시작한 상상누리터 사업의 운영 단체가 모두 특정 종교로 한정되면서 다양성 이슈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내년에는 운영 주체 및 공간을 확장하는 등 변화를 줄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시는 올해 중 상상누리터 2개소를 더 개소하고, 내년에 4개소를 추가해 총 10개의 상상누리터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주광덕 남양주시장은 “남양주형 초등돌봄센터인 상상누리터는 지역의 다양한 공간을 활용한 ‘공유경제’, ‘공유돌봄’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며 “지역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해 어린이가 행복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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