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미스코리아와 딥페이크

머니투데이 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2024.10.02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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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미스코리아대회'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딥페이크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대회 본선에 오른 후보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딥페이크 영상 속 내가 더 매력적이라면 진짜 나와의 갭은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 무대화면에 떠오른 질문에 대답이 이어졌다.

여론의 비판은 이랬다. 딥페이크는 곧 성범죄인데 미스코리아 후보자에게 던진 이런 질문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질문은 '폭력'이자 '희화화'이며 '성희롱'이자 '위계에 의한 괴롭힘'이라는 비판이다.



미스코리아대회에 대한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의 미'를 선발한다는 취지로 1957년 시작된 대회는 수십 년 동안 신예 인기인을 배출하면서 승승장구했다. 진선미에 오른 수상자 가운데 적잖은 수가 연예인으로 활동하면서 대중문화의 자원을 공급하는 구실도 했다. 미스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세계미인대회에 참가해 수상하면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는 일로 추켜세워지기도 했다.

대회의 위상은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사건사고를 겪으며 추락했다. 선발과정의 부정행위와 편파판정이 문제가 됐다. 무엇보다 여성을 무대에 세우고 드레스와 수영복을 입혀 심사하는 과정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간주하고 결국 상품화한다는 비판이었다.



미스코리아대회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시들해졌다. 매서운 비판이 계속되자 지상파방송이 생중계하던 형식을 케이블방송 중계로 바꿨다.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2002년 중계권이 이전된 뒤부터 잦아들었다. 수상자의 위상도 예전보다 훨씬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딥페이크 '사고'는 냉정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딥페이크=성범죄'라는 등식이 옳은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딥페이크 자체가 성범죄는 아니다. 딥페이크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가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 광복절에는 수의를 입은 독립운동가에게 멋진 한복을 입혀주는 영상이 등장해 주목받았다. 또 광복을 맞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독립운동가의 '가상만세' 영상도 인기를 끌었다. 모두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다.

딥페이크라는 기술은 가치중립적이다. 쇠로 만든 칼은 유용한 절단의 도구면서 살상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인간에게 달렸다. 문제는 최근 딥페이크를 이용해 많은 성범죄가 자행된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인공지능연구소 센서티(Sensity)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 제작된 딥페이크 영상 1만4000여건 가운데 96%가 성적 합성물이라는 보도도 있다.


미스코리아대회의 잘못은 이런 맥락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데 있다. 딥페이크가 성범죄에 이용되면서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이 때문에 국회가 딥페이크 관련 성폭력범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을 만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근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대중미디어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열어왔다. 대중미디어는 결과적으로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의 영역에서 작지 않은 성과를 이뤘지만 언제나 성적 이미지를 재현하는 도구로도 활용됐다.



디지털미디어와 인공지능 콘텐츠의 시대에 새로 등장하는 도구도 예외는 아니다. 출판이라는 미디어를 활용해 음란소설을 써내고 비디오라는 도구를 활용해 포르노그래피를 제작하는 일을 비판할 수 있지만 출판과 비디오 자체가 잘못된 미디어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딥페이크를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추구하는 세계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딥페이크라는 이름은 근본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딥러닝(Deep Learning)과 페이크(Fake)를 섞은 표현이지만 '페이크'에는 '가짜' '속임수' 등의 뜻이 있어서 그 이름만으로 이미 부정적인 색깔이 덧입혀졌기 때문이다. 아예 이번 기회에 딥페이크를 대신할 가치중립적인 이름을 만들어주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그럴듯한 모방'이라는 의미로 '딥미믹'이나 '딥이미테이션'은 어떤가.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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