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왕’(歌王) 조용필의 귀환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

머니투데이 이설(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10.0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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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YPC, 유니버설 뮤직사진=YPC, 유니버설 뮤직


1950년 경기 화성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1968년 풋내기 밴드 앳킨스를 결성해 미군 부대가 있던 파주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스스로 프로다운 밴드 활동으로 꼽은 것은 1년 뒤인 파이브 핑거스 시절. 이후 김트리오와 25시의 멤버를 거쳤고, 1974년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앞세운 밴드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철저한 무명. 데뷔 연도와 밴드 활동 시기 등에서 이견이 있을 정도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고 스타덤에 오른 것은 1976년이다. 불후의 명곡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히트한 것을 시작으로 1980년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등이 수록된 1집으로 국내 가요계에서 처음으로 밀리언셀러를 달성하며 명실상부한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그 사이 밴드 ‘그림자’는 ‘위대한 탄생’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후로도 히트곡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왔다. ‘고추잠자리’(1981) ‘못찾겠다 꾀꼬리’(1982) ‘친구여’(1983) ‘킬리만자로의 표범’(1985) ‘모나리자’(1988) ‘추억 속의 재회’(1990) ‘바람의 노래’(1997) 그리고 ‘헬로’와 ‘바운스’(이상 2013), ‘세렝게티처럼’(2022)과 ‘필링 오브 유(Feeling of You·2023)’까지. 올해 만 74세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가왕’(歌王) 조용필이다.

그런 그가 10월 22일 정규 20집 ‘20’을 발매한다. 정규로는 2013년 발표한 19집 ‘헬로’ 이후 11년 만이다. 당시 타이틀곡 ‘헬로’와 더불어 수록곡 ‘바운스’가 큰 인기를 얻으며 각종 음원 차트에서 손자뻘 되는 K-팝 아이돌을 밀어내고 정상을 밟았다. 심지어 아이돌의 전유물 같던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조용필은 지난 25일 홈페이지를 통해 "오랜 시간 준비해 온 20집은 팬 여러분의 변함없는 사랑과 응원이 있었기에 완성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음악을 통해 대중과 더욱 깊이 교감하고, 함께 감동을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고희(古稀)를 넘은 가왕의 열정은 도무지 식을 줄을 모른다. 원래는 데뷔 55주년으로 계산되는 지난해 20집 앨범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소리의 탐구자’라는 별명답게 20번째 앨범에 걸맞은 완성도를 위해 발매 시기를 미뤘다는 후문이다.



이번에도 조용필은 새 장르에의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데뷔 56년간 조용필은 단 한 번도 자신만의 장르에 안주한 적이 없다. 록, 발라드, 컨템포러리 록, 프로그레시브 록, 뉴웨이브, 신스팝, 트로트, 펑크, R&B, 퓨전 재즈, 전자음악(EDM), 민요 등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 그리고 거의 다 성공적으로 해냈다. 특히 장년으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그의 도전은 더욱 과감해지고 있다. 지난해 미리 공개한 싱글 ‘라’는 데뷔 이래 처음 하는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장르였고, ‘필링 오브 유’는 귀를 사로잡는 가사와 멜로디가 특징인 신스팝 장르였다. 소속사 YPC는 "트렌디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놓치지 않는 조용필만의 기민함이 있다. 조용필은 ‘라’를 통해 새로운 도전도 명민하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 아티스트의 능력을 보여준다"고 자평했다.

56년간 한국 가요계를 주름잡은 조용필의 저력은 어디서 나올까.

우선은 남들 같으면 은퇴를 하고도 남을 나이인데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철두철미함에 있다. 조용필은 악보를 직접 그리고, 녹음할 때는 도중에 끊지 않고 하는 ‘원 테이크’를 선호한다. 그러면 체력적으로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음에 대한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으로 자신을 벼려왔다. 조용필의 최근 마지막 공연은 지난해 12월 9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구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2023 조용필 & 위대한 탄생 투어 콘서트 - 서울’. 당시 그는 감기에 걸린 상태였지만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사진=YPC사진=YPC
오랜 시간 조용필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던 밴드 위대한 탄생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1974년 ‘조용필과 그림자’라는 이름으로 처음 결성된 ‘위대한 탄생’은 1980년 이름을 바꾼 후 40년 넘게 조용필과 동고동락했다. 시대에 따라 일부 멤버 교체는 있었지만 언제나 남다른 테크닉과 사운드로 조용필의 음악적 성과에 크게 기여했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북코리아)의 저자인 윤영인 씨는 ‘위대한 탄생’을 "대중음악을 고전음악의 반열에 올려놓은 조용필의 역사를 함께한 단체"라고 평했다.



가왕의 복귀 소식에 유튜브 채널과 SNS 등에는 이를 환영하는 팬들의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너무 행복하다. 컴백해줘서 감사하다"는 반응이다.

조용필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 히트곡 ‘그 겨울의 찻집’과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노랫말을 썼던 원로 작곡가 양인자 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조용필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고했다. "처음 만났을 때, 앉아서 제가 쓴 가사만 보고 있다가 후딱 나가버렸다. 그가 어느 문장에서 시선을 멈췄는지 자꾸만 저도 의식하게 됐다."

하지만 이미 최고의 가수였던 조용필에겐 분명 다른 가수들과 구별되는 구석이 보였다고 한다. "가수들은 대개 익숙한 스타일의 곡만 받으려 한다. 그런데 조용필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나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같은 실험적인 곡도 잡았다."



양인자 씨는 "조용필은 음악 말고는 아무것도 재미없어하는 이"라며 "곡을 주는 관계로서는 참 가슴 뛰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음악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 같은 사람의 20번째 앨범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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