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키부츠’, 김치 먹고 쑥쑥 자란 10년 [리뷰]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4.10.0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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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킹키부츠' / 사진=CJ ENM뮤지컬 '킹키부츠' / 사진=CJ ENM


시작은 45년 전 영국, 1979년의 작은 신발 공장이었다. 영국 수제화 공장들이 줄줄이 폐업하던 시기, 드래그퀸(여장 남자)을 위한 특별한 부츠를 제작해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공장의 이야기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실화는 다큐멘터리(1999)와 영화(2005)로 만들어졌고, 2012년 뮤지컬로도 탄생했다. 바로 ‘킹키부츠’다. 시카고에서 초연된 ‘킹키부츠’는 미국을 넘어 더 넓고 더 많은 관객에게 보였다. 2014년에는 한국어로 ‘킹키부츠’를 만나게 됐고, 한국 프로덕션은 김무열, 지현우, 오만석, 강홍석 등 스타 배우들과 실력파 뮤지컬 배우들을 앞세워 드래그퀸라는 낯선 소재를 시장에 빠르게 안착시켰다. 초연 이후 바로 스테디셀러로 올라선 한국 프로덕션은 총 여섯 번의 공연을 올리며 올해 10년째를 맞이했다.

모든 캐스트의 공연을 보진 못해 절대적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살짝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번 ‘킹키부츠’는 명확하게 “엄청나다”라는 느낌이다. 강홍석, 최재림, 이석훈, 김호영, 고창석, 전호준, 한선천, 김강진 등 이미 ‘킹키부츠’에 여러 차례 발 들였던 달인들이 대거 엉겨 붙은 이번 육연은 좀 더 유쾌해진 대사에 더 격렬해진 몸짓으로 155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허투루 넘어가는 신이 없고, 희로애락의 파고가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는 넘버 시연도 몰입도가 가히 최고다.



뮤지컬 '킹키부츠' / 사진=CJ ENM뮤지컬 '킹키부츠' / 사진=CJ ENM
10주년 공연을 더욱 뜨겁게 만든 주역은 롤라 역의 강홍석과 엔젤들이다. 강홍석은 초연, 재연, 사연, 오연, 그리고 육연까지 삼연 빼고 한국 프로덕션의 모든 시즌을 함께했다. 이 역할을 스쳐간 많은 배우들이 있었지만 ‘킹키부츠’를 대표하는 롤라는 단연 강홍석이다. 일명 ‘홍롤라’로 불린다. 최근 SNS를 뜨겁게 달군 이창호의 ‘쥐롤라’ 영상이 바로 ‘홍롤라’를 모티브로 삼아 제작한 것이다. 롤라는 극 중 아마추어 복서 출신의 드래그퀸이다. 편견과 억압에 당당히 맞서는 인물이자, 아름답고 유쾌한 남자다. 다부진 근육과 매끈한 각선미를 동시에 뽐내는, 기꺼이 “언니”라 부르며 손잡고 싶은 캐릭터다.



강홍석은 관객이 자신에게서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되 그 모든 것을 롤라라는 인물 안에서 추출한다. 강홍석에 의해 완벽하게 로스팅 된 롤라는 그 보디감이 참으로 탁월하다. 극 중간에 “너 자신이 돼 타인은 이미 차고 넘쳐” 같은 대사를 하는데, 10년간 쌓인 배우의 연륜이 느껴지면서 기자도 울컥했다. 관객들을 웃기는 것도 주로 강홍석이다. 그의 웃음 명중률은 거의 100%다. 강홍석은 관객과 소통하며 자신이 서있는 무대를 스스로 연출하는 몇 안 되는 배우다. 그가 넘버를 시연할 때는 전율의 연속이다. 소름 돋는 가창력에 닭살이 가라앉을 틈이 없다. 상당히 폭발력 있는 가창을 구사하는데, 세밀한 감성이 돋보이는 소울풀함도 함께 있다.

뮤지컬 '킹키부츠' / 사진=CJ ENM뮤지컬 '킹키부츠' / 사진=CJ ENM
엔젤 역시 ‘킹키부츠’의 미더움이다. 엔젤은 한 역할이 아닌 집단의 지칭으로, 롤라와 함께하는 드래그퀸 무리들(6명)이다. 이들의 역할은 대부분 춤에 집중돼 있다. 시종일관 화려한 코스튬과 춤으로 ‘킹키부츠’에 활력과 재미를 불어넣는다. ‘킹키부츠’는 엔젤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킹키부츠’의 마지막을 엔젤이 장식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커튼콜 때 객석에 내려와 관객과 일일이 마주하며 춤추고 스킨십을 한다. 끝 좌석에 앉아있던 기자가 수줍게 내민 손에도 엔젤의 다정한 손바닥이 맞닿았다. 반대편에 있던 관객은 엔젤과 열정적으로 함께 춤을 췄다. 모두가 기립해 환호하고 춤추며 즐거워했다.


엔젤 중에서 으뜸은 한선천이다. 무용수인 한선천은 삼연을 제외하고 초연부터 모든 공연에 존재했다. 맵시가 타고난 한선천은 엔젤 중에서 가장 과감한 의상으로 호기롭게 관객의 눈을 사로잡고, 무용수답게 유연하고 단단한 몸짓으로 연신 감탄 나오는 동작들을 보여준다. 10년 차 엔젤 한선천의 관록은 무대 위에서도 객석에서도 격렬하고 역동적이다. 또 예쁘다.

적어도 기자가 본 9월 27일 공연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전율의 향연”이라 평가하기 마땅했던, 10주년의 깊이가 느껴진 회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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