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연임에 연임...평생 감사로 살았던 신의 직장

머니투데이 홍재영 기자 2024.10.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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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별 장기 재직 감사 현황/그래픽=윤선정시장별 장기 재직 감사 현황/그래픽=윤선정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 등으로 자본시장에서 상장사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상당수 상장사에서 감사들은 지배주주의 영향력 아래에 있고 장기 연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 독립성 저해로 상장사들의 내부통제가 취약해 진다는 지적이다.

1일 한국ESG기준원의 '2024 주주총회 리뷰(2)-국내 상장기업의 감사 장기 재직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분석대상 상장사 1584개사(코스피 324개사, 코스닥 1260개사) 중 감사가 6년 넘게 장기재직 중인 곳은 337개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분석 대상 기업의 21.3%에 달하는 수치다. 분석 대상은 올해 반기보고서를 제출한 기업 중 감사(상근·비상근)를 선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기업들이다.



전체 분석 대상 기업에 재직 중인 감사의 평균 재직기간은 약 4.1년이었다. 시장별로 보면 코스피 시장 기업은 평균 4.5년 가량, 코스닥 시장 기업은 4년 가량이었다. 감사가 6년 넘게 장기 재직 중인 기업은 각 시장 전체 상장사 대비 비중으로 따지면 코스피 시장이 22.8%, 코스닥이 21%에 달했다. 한 기업에서는 연임에 연임을 거듭하며 30년 넘게 한 사람이 감사로 재직한 사례도 있었다.

보고서는 이처럼 감사가 장기재직 중인 기업에서는 감사의 독립성뿐만 아니라 충실성 훼손의 우려가 큰 사례들이 여럿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장기 재직하고 있는 감사 중 소속 회사의 전직 등기이사로 재직한 이력이 확인되는 사례가 16건에 달했다. 횡령과 배임사건이 발생하거나 외부감사인으로부터 적정 외(한정, 의견거절) 감사의견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현행 상법 시행령에서 사외이사는 한 상장사에서 6년을 초과해 장기 재직했을 경우 결격사유가 인정된다. 그러나 상근감사에 대해서는 딱히 관련 규정을 두고 있지 않는다. 국내 일부 주요 연기금과 한국ESG기준원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 등에서 감사 장기 연임에 대해 판단 기준을 두지만 법적으로는 결격사유를 둬 제한하지 않는 셈이다.

그간 시장과 학계 등에서는 상장사 감사의 독립성이 분명하게 보장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한 원인인 상장사 지배구조 후진성의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보고서는 "감사 선임 시 감사위원과 비교해 지배주주의 재량이 개입될 여지가 높다"며 "상대적으로 감사의 독립성을 감사 선임 이전 단계에서부터 보장하는 법적 장치가 미흡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짚었다.

감사 독립성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도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김소영 부위원장 주재로 기업 밸류업 관련 회계, 배당부문 간담회를 열고 지배구조 우수기업에 대해 인센티브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배구조 우수기업에게 감사인 주기적 지정제를 일정 기간 면제해 주는 것이 골자다.


금융위는 구체적 평가기준과 방법, 면제방식 등을 2분기 중 확정하겠다는 방침이었으나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난 4월부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이를 논의 중인데 감사독립성을 핵심 지표로 삼는 방안 등이 거론된 바 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등 회계업계에서도 관심이 큰 사안으로, 금융위는 기준 확정을 서두를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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