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조커, 감당할 수 있겠어? ‘조커: 폴리 아 되’

머니투데이 정수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9.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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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조커가 돌아왔다. 이번엔 자신의 파트너 할리 퀸과 사랑에 빠지며 춤뿐 아니라 노래도 부른다. 물론 조커와 할리 퀸이 그려내는 사랑은 우리가 상상했던 그런 색깔의 사랑과는 거리가 멀고, 춤과 노래의 향연이 펼쳐지는 뮤지컬 형식이지만 ‘라라랜드’ 류와 백만 광년은 떨어져 있다.

2019년 개봉한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의 후속편인 ‘조커: 폴리 아 되’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 다섯 명(실제론 여섯 명)을 죽이며 광기의 조커로 거듭났던 그때로부터 2년 뒤를 배경으로 한다. 세상을 뒤흔들며 고담시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으나 정작 수용소에 갇혀 재판을 기다리는 아서 플렉의 모습은 무기력하다. 특유의 마르고 비대칭으로 굽은 어깨의 뒷모습으로 아서가 등장할 때부터 우리는 이 인물이 2년 전보다 얼마나 더 황폐해졌는지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기대가 스멀스멀 드는 건 당연지사.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영화 초반, 더 이상 농담(조크)을 던지지 않고 발작처럼 터지는 웃음도 보이지 않던 아서 플렉의 눈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건 수용소 정신병원에서 리 퀸젤(레이디 가가)을 만나면서부터. 처음부터 아서의 눈길을 잡아챈 심상치 않은 리는 그에게 접근하기 위해 스스로 정신병원까지 입원한 인물. 아서가 아닌 조커를 추앙하는 리의 흠모는 아서를 각성시키고, 리 스스로도 각성해 ‘할리 퀸’이라 지칭한다. 영화의 부제가 ‘폴리 아 되(Folie à Deux)’, 밀접한 관계의 두 사람에게 함께 일어나는 감응성 정신병을 뜻하는 의학용어로 정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조커와 할리 퀸이 된 그들은 서로의 광기를 탐하며 세기의 재판에 임한다.



영화에서 아서와 리, 아니 조커와 할리 퀸의 감정 서사를 맡는 건 뮤지컬 형식의 노래다. 문제는 이들의 감정 서사를 온전히 뮤지컬 형식에 맡긴 것이 좋은 판단이었는지에 있다. 우리는 5년 전, 그 계단에서 아서 플렉이 조커로 거듭나며 춤을 추는 장면을 보며 전율에 몸을 떨었다. ‘조커: 폴리 아 되’에서 조커는 할리 퀸과 함께 열댓 곡의 노래를 부르고, 탭댄스까지 춘다. 전문적으로 노래를 불렀던 배우가 아님에도 라이브로 소화했고, 그 감정선만큼은 충분히 우러난다. 법정에서 자신이 조커임을 받아들이고 부르는 ‘Joker is me’ 같은 노래는 압권. 그런데 대부분의 감정선을 노래로 표현하다 보니, 뒤로 갈수록 반복되는 느낌이 들고, 감정선은 표현되지만 그로 인해 서사가 충분히 감응되느냐는 별개의 문재로 보인다. 뮤지컬 장르 자체도 호불호가 있는데다, 다크한 느낌의 노래로 일관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City of Stars’를 부르는 조커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장르의 차용도 어느 정도 선에서 합의했어야 하지 않을까.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스타 이즈 본’ ‘하우스 오브 구찌’로 배우의 역량을 충분이 발휘한 레이디 가가가 이 영화에서 할리 퀸을 맡은 건 빼어난 선택. 대중에게 할리 퀸은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마고 로비의 모습으로 익숙하지만, 레이디 가가는 마고 로비와는 확고히 다른 할리 퀸을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했다. 노래와 춤과 연기를 소화하면서 동시에 호아킨 피닉스의 광기 어린 연기에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발휘해야 하는 ‘조커: 폴리 아 되’의 할리 퀸에 레이디 가가만큼 어울릴 인물이 또 있을까 싶다. 피아노 건반을 부서져라 연주하는 광기 어린 할리 퀸에게서 마고 로비의 그것보다 보다 심연의 어두움이 느껴진다.


그러니 역시 문제는 사랑에 빠진 조커와 할리 퀸의 노래를 주고받는 모습이 관객이 원하는 것인가다. ‘조커’는 억압과 불안과 무례로 가득했던 사회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그로 인해 극악한 심리적 압박을 절절하게 표현한 조커의 모습으로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오죽하면 영화를 보고 이에 몰입된 일부 관객들의 과열된 반응이 있을까 우려할 정도였다. 그러나 ‘조커: 폴리 아 되’는 아서/조커와 리/할리 퀸의 감정선에 집중하면서 이야기의 품이 한층 좁아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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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가 DC 유니버스에 속하지 않은 독립적인 영화이긴 하지만, ‘조커: 폴리 아 되’에서는 조커의 파트너인 할리 퀸이 동등한 주인공인 데다 아서 플렉의 재판을 맡은 담당 검사로 훗날 ‘투페이스’가 될 하비 덴트(해리 로티)가 나오는 만큼 약간의 연결된 서사 혹은 앞으로 나올 이야기를 기대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도 영화는 꽉 닫힌 결말을 보여주며 기대를 접게 만든다. 아서 플렉이라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봤을 때는 맞춤한 결말일지 모르겠으나, ‘베테랑2’ 때도 그랬지만, 관객이 원하는 ‘조커’의 결말인지는 아리송하다. 감독은 전편의 반응을 보고 이 작품을 의식적으로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으나, 무의식적인 영향이 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린다고? ‘조커: 폴리 아 되’는 호아킨 피닉스와 레이디 가가가 빚어내는 압도적인 연기를 큰 화면으로 보는 것엔 충분한 의의가 있다. 어깨뼈만으로도 감정을 전달하는 독보적인 배우인 호아킨 피닉스가 레이디 가가와 펼치는 앙상블 연기는 외면할 수 없는 포인트다. 전편에 이어 음악을 맡은 힐두르 구드나도티르의 음악 스타일은 영화의 스타일을 완성하는데 톡톡한 역할을 한다.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등 오래된 재즈 넘버와 올드 팝 등은 중장년층에게 반가울 듯하다. 전편의 기조는 있지만 다른 영화라는 점을 인지하고 영화관에 갈 것을 권한다.

‘조커: 폴리 아 되’는 10월 1일 개봉한다. 러닝타임은 137분. 쿠키 영상은 없으나 영화를 여는 오프닝이 특별하다. 1930년대 인기를 끈 고전 애니메이션 ‘루니 툰’ 형식으로 제작한 오프닝 애니메이션이 전편의 테마를 녹여내면서 이번 영화의 복선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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